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느냐? 신으로 보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으라 한다면 명확한 답이 나올수 있을까?
사람의 형상으로 어머니의 육신을 통해서 태어났기에 생물학적 인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행한 행적과 그 생각과 의지 그 신념은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어서 존재했다.
약소국 이스라엘의 조그만 촌 동네에서 제대로 된 교육과 가르침이 없었음에도 수많은 제사장들과 학자들을 가르치시고 그 지혜를 보이셨다
단지 천재라는 이유로는 설명되지 못하고 납득이 가지도 않는다.
신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신의 개념은 무형의 어떤 강력한 힘과 권능을 지닌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신으로 보기엔 과학적 실체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의 본질과 그 특성을 근원적으로 파고들어가면 좀 다른 인식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출현은 인간이 인식하기 시작했던 시점부터다.
인간이 인류진화의 그 어떤 시작점부터 하나님을 인지하고 대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창조주는 인간이 그 이름을 부르던 부르지 못하던 창조부터 지금까지 관여하시고 그 섭리역사를 펴오신 터이다.
존재인식의 그 시작점을 역사의 터닝포인트로 보는 것이다.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부르시자 아담은 벌것벗은 몸이 부끄러워서 두려운 마음에 숨어있었다.
그러던 인간이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개역개정 창세기 4장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란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했다
그런데 셋을 거쳐서 에노스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찾기 시작한 것이다
유대교의 민족신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대목이다.
이처럼! 그들이 믿어왔던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이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안에 내가 내 안에 아버지가 살아역사하시는 것을 느끼라 하였다.
예수께선 인간으로서 신을 대하는 방법과 바라보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의 뇌마음을 통하여 얻어지는 실존세계의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시키시려 하셨던 것이다
지금 현시대도 실존을 이야기하면 어려운데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원시적 생태의 삶속에서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묘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이였을까?
그리고 그분은 내가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온 것이다
그래서 나를 믿어라 그러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게 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셨다.
아들! 필자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몇번씩이나 반복해서 기재를 하였어도...
과연 읽는 사람들중 몇이나 얻어갈 수 있을까? 쓰면서도 고뇌가 되는 핵심 포인트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신약을 이해할 수도 없고 예수님에 대한 근본을 알수도 없을 것이기에!
너무도 안타깝고 서글프기도 하다.
평생을 예수만을 믿으며 외치면서 죽기까지 살아온 사람들중..
신약역사를 펼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죽어서 영의 세계에 가보면 그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확인할 터이다.
아들은 인간이 그 시대급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차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인간 혈육이 있는 인간관계와 영의 몸인 영들의 관계성이 어찌 같을까?
천사를 수종드는 존재로만 기록되어 있는데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몸종의 개념도 아닌 것이다
그 모든 영의세계에 사용되는 개념들은 차원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아들이란 예수께서 인간이 하니님께 그 시대에서 다가갈 수 있는 최고차원의 개념인 것이었다
누가 그 길을 내었을까?
예수께서 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도 예수께 나아와 수종을 든 것이다
수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적 사역을 함에 있어서 동참했다는 뜻이 된다
그가 비로소 땅과 하늘의 주권을 쥐고서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모든 영과 육의 세계를 다 주관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종을 들더라! 고 기록한 것이다.
아들 차원이란 비유인 것이다.
아들의 차원성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는 것이기에 남의 것이 아니라 결국 내것이 된다는 의미다.
이 땅과 하늘의 권세가 나에게로 온다는 의미다
헌데 아들차원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다
신약 역사상 그 차원에 오른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뿐이셨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그 차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다다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지금 신약역사를 펴왔던 전세계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보고 왔던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아들차원에 오르기위해서 본인 앞가림에 전력을 쏟을 때이다.
인생이 저물고 있다. 서산넘어로 해가지면 어두움만 남는다.
그 마지막 삶과 생이 서글픈 이유다.
여러편의 글을 올려놓았다. 일고 또 읽어서
남은 시간동안 매진하여 신약역사의 핵만큼은 제대로 깨닫고 가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수 있을 터이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