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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란!

지성(知性) 이란 영역이 무엇일까?

한자를 풀이해보면 본성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성이란 본성/인성을 이른다.

사람의 기본 품격이랄수 있는 인간의 성격에 대하여 탐구해가는 과정을 지성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성격을 알아야한다
내 본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갖추고 있는 것과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상대를 가늠하고 파악하고 인식할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성이란 내 스스로가 본연의 모습을 알기위해서,  찾기위해서 노력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헌데 흥미있는 사실은 현 세대들이 80년대 대학가요제를 보고서 유트부 영상에 달린 댓글을 평가한 대목이다.

고독과 낭만은 알겠는데 지성이 어디에 있느냐는 언급이었다.

연극이 끝난후에 라는 가요였는데..

지성을 찾아볼수 없었던 것이다.
현 세대들이 그 노래를 듣고서 공감하지 못했던 그 지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서로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현 세대에서 바라보는 지성의 범주란 무엇일까?
수능세대의 학습과정을 통해 성장한 그들에게 지성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80년대를 관통하여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지성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지성이란 사람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리하여 사람은 배울 수록 깨달을 수록 내가 인간의 근본 성격에 부합한지를 더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자아성찰에 드는 것이다.

기능적인 인간이 아닌 본질적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이것을 전통적 개념의 지성이라 할 것이나!

현 세대는 이것을 학습과정에서 많이 놓치고 배워온 것이다.

그 폐혜들은 무수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며!
교권과 인성교육의 부족함은 언급해야 입만 아프다.

결국 지성이란 내가 나를 파악하는 실존의 영역에  발을 디뎌야 가능한 과정인 것이다.

보이는 내가 아닌 보이지 않는 실존으로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연극이 끝난후 라는 노래 가사가 대중들의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은 그 과정이 우리의 마음을 실존속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녀의 교육을 논할진대 필자도 부모로서 너무도 소홀히 지나쳐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먹고 사는 것이 그만큼 힘겨웠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우선이고, 그 때문에 내 스스로도 지성이란 과정을 망각한채 기능적 인간에 만족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의식주를 추구하며 남부끄럽지않게 살아가려 몸부림을 친 결과이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옷도 계절따라 차려입었다.
배우자와 자녀를 이끌고 외식도 하고 영화관도 다녔다.
가끔씩은 가족여행도 다녀오면서 삶의 여유를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못했던, 대화가 되지 못했던 그 근본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 유명한 교육심리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나는 지성인으로서 부족했던 것이다.
알았다 했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죽기전까지 세상을 제대로 돌려놓아야 할 짐과 사명을 떠안은 것이다.

내 삶이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고 내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고 살다가 숨이 멈추면 그처럼 부끄러운 삶도 없을 것이다.

당연한 것을 왜 모르냐고 질책하기 전에 당연한 것을 왜 가르치지 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먼저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반성하기 전까진, 깨우치기 전까진 변함이 없는 것이다.

평생을 살았어도 짐승의 가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추위와 배고픔에 고생했던 기억만을 가지고 간다면 그 나라에 이르러서 무엇을 논할 수 있을 터인가?

곤고한 일상속에서 삶의 존재이유와 보람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하루였다.

임마뉴엘 칸트는 죽기전
[ 좋다!] 는 유언을 한마디 남겼다.

그가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배우고 연구해왔던 그 삶의 모습은 무엇이였길래?

인간의 이성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