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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혜

사람은 같은 데이터를 두고서 다르게 인식한다

그 사람의 핵은 바로 인식관이다

인식관이 제대로 심어진 사람은 주변과 소통하고 화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핵도 인식관 바로 그 사상이다.

성경엔 그리스도가 금강석보다 단단한 이마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이던지 그리스도의 인식에 반하면 깨어진다는 것이니!
이를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권세라 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이로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그에게 주셨다.

열왕들이 그리스도에게 찾아와 그의 사상과 정신을 배우고 그의 생각대로 나라를 다스렸으면 지금엔 세상이 천국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두고서 제자들과 깨어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를 두고서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이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천국은 씨앗인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시작되어 가는 것이었기에!

지상에 천국을 이룬다고 휘황찬란한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었음은 이미 알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시라!

지금 세상은 너무도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변화무쌍이다.

새로운 기기와 문물들이 도입되어서 가치관의 혼선을 빚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게 안되니까! 국가에선 법으로 제정해서 강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분리수거도 그렇고!
교통법규도 그렇다.
교육시행령도 그렇고!
가정의 부모교육에 대해서도 심할 정도로 간섭하고 있다.

상식! 상식은 인류가 오랜 시간 지속적. 반복적으로 행하면서 지켜온 신념의 영역이다

신앙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의 양심을 지키는 마즈노선이었다.

이러한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가정이나 사회, 국가는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상식이 무너지니 국가에선 법으로 강제하기 시작했다.

법으로서 사람들에게 상식을 주입시키고 있다.

그러면 왜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일까?

교육제도의 붕괴원인이 가장 크다.

초등학교 현실을 보자!

여교사와 남교사의 성비율이 무너진 지 오래다.
가산점 폐지가 결정타였다.
헌재도 한심하고 그렇다.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상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보다 보니 감이 떨어졌던 것이다.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고 이 교육철학은 병립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구조를 무너트린 것이다.

왜 호로자식이란 말이 나왔을까? 편견이라고?

그래서 과부들은 자녀교육을 아주 엄하게 시켰다.

자칫 아버지 없이 응석받이로 자라날까 봐서 그렇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공통성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경악할 상황들이 많이들 올라온다

상식의 선을 넘은 언행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이런 말을 공통적으로 한다

왜? 내가 하겠다는데! 이렇게 사용하려 만든 거 아니냐?
내가 등받이를 조절한 게 머 그리 큰 잘못이냐?
불편하면 네가 다른 자리로 옮겨라!

수능세대! 생각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주입식 교육을 놓친 폐해다.

예전엔 윤리/도덕시험을 통해서 상식에 대한 경계를 가르쳐왔다.

누구나 제대로 된 상식을 지닌 학생이라면 다 100% 맞출 수 있는 주입식 시험문제였다.

상식에 관한 것이었다.

기본점수 주려고 이런 상식문제를 출제했을까?

아니다! 모든 배움의 시작은 상식에서부터다.

상식이 없는 자에게 지식을 전수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다이나마이트를 가지고 광신을 폭파하라고 개발했더니!

전쟁 살상무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인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고 동기부여를 해오고 있다.

주입식 교육은 상식에 대한 교육이다.
상식을 모르고 지혜만을 추구한 세대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토털 주 몇십 시간을 넘지 않으면 하루에 몇 시간을 더 일시 켜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하루에 기본 노동시간이 있다.
소도 일정시간 이상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날 별 탈 없이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

천박하다 상식이 없다 그런 주권자를 뽑는 마인드가 창피하다.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상식 없이 살아가는 것이 짐승과 무에 다를까?

정치인 판사/검사/경찰 그리고 교수라 하는 사람들/ 의사

도대체 선을 넘어도 너무도 넘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그리스도는 그 시대 그런 세상 속에 한줄기 양심으로  인류에게 상식을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엔 신분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형제로서 대하여라! 너희는 다 아들들이다 그러니 형제의 우애로서 화평하게 대하여라!

대한민국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서로의 심장에 총알과 칼을 박았다

그런지가 70년 세월이 지났다 아직 한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상식이란!
아직까지는 도발하면 언제든지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를 품고 있다.

그리고 언제던 저 상대를 죽이고 빼앗겠다는 생각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인류의 차원이 올라가면 결국 하나님의 생각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생각차원의 변화는 너무도 완고한 인식이라서 쉽사리 바꾸지를 못한다

헌데 이를 예수께서 오셔서 바꾸신 것이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세리나 창녀, 죄인들까지도 품으시고 형제의 도를 설파하셨다.

그 핵은 아들개념이었다
우리는 비천한 종신분이 아니다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찾아라!

아들로서 아버지를 불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여라!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옵고! ]

우린 가정에서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상식으로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상식의 선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권면하고 있는가?

그렇다.
모든 도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에선 두도사를 엄히 경계한다.

바로 마음의 도를 우선한다.
마음은 양심이다 선량함이다.
악함을 경계한다.

먼저는 선과 악을 논하는 것이다.

무릇 지혜를 찾으려는 자는 먼저는 상식이 무엇인지를 깊이 통찰해야 할 것이다.

상식을 모르는 선생이 강단에서 가르치는 시대
양심을 모르는 선생이  떠드는 세대가 되었다

돈/명예/권세 필요는 하겠으나!

인간의 상식으로 인간으로 존재해갈 수 있기를

[선생이시여! ]
겸손되이 부르며 삶의 기본과 지혜를 묻던 그들을 떠올려 보자!
지금 다시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우린 이 부분을 놓고서 [ 선생이시여! ] 가르쳐 주시옵소서 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