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더 편하게 다루어보자!
차원 /차원성이란 단어를 언급할때 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칸트 이런 철인들이 상기되는 그러한 논조를 벗어나서 차원에 대하여 담담하게 논하여 보자!
차원이란 개인에서 가정 그리고 민족 더 나아가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 포용하고 묘사할 수 있는 생활보편적 언어다.
그렇게 인식하고 시작해보자!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오늘 하루는 이렇게 생활해보자! 알았지? 그러면 그 차원까지 행하면 아빠랑 엄마랑 같이 맛있는것 먹으러 갈테니!
자녀는 자신의 현 상황을 간략하게 떠올린다 약간은 부담스럽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마음을 다잡아 본다.
회사에서 대표가 직원들에게 성과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신년사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15년차에 절체절명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만 극복하면 더 강한 기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 사원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직원들은 회사대표의 훈화를 듣고서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회사가 망하면 또 다른 직장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 한들 지금까지의 경력을 인정받기도 힘들다 그런 저런 생각들이 들자 애써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런것들이 차원이다.
예수께서도 사명자로서 그 위치에 올라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이끌고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을 대할 때엔 이젠 종처럼 죄인처럼 나가지 말아라!
내가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권세로 너를 깨끗게 하였노라!
더이상 율법아래서 죄인으로 살아가지 말아라!
사랑안에서 자녀의 권세를 누리려 살아라!
이렇게 사는 것이 보다 더 이상적인 삶이다.
이러한 새역사의 차원에 이르러라!
과거에 연연하다보니 앞으로 한발자욱도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원이란 과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적 삶이다.
그래서 생활속에서 차원적 삶을 산다는 것은 다름아닌 조그만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항하여 아버지! 라고 부를수 있는 그 변화에서 새역사의 차원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천사들은 너무도 신기해했다. 인류 최초로 아들의 권세를 지니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0일 시험후에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다고 성경엔 기록되어있다.
수종들었다? 육적인 의미는 그러하거니와!
천사들이 하나님 말고서 그 누구에게 수종을 들었을까?
헌데 예수님께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던 것이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세숫물 떠다드리고, 간식 챙겨다 드리는 것이 수종드는 것일까?
하나님의 생각과 의중을 따라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수종든다는 영적표현이다.
천사들이 예수께 나아와 신약역사의 차원에서 일으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아멘! 하면서 따랐다는 뜻이다.
수종든다 / 대적한다
누군가를 따르는 것이 수종드는 것이다.
반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내세우는 것을 대적한다고 표현한다.
신약역사가 흘러서 이젠 과거속으로 흐르고 있다.
새역사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명자를 향하여 그 뜻이 흐르는 것이다.
당연 천사들도 그 사명자를 향하여 수종들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육적으로 판단하였다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하여 보아라!
조롱하였다.
천사들까지도 수종들면서 따르는 예수님을 대적했던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무지이며, 시대의 차원이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했으며 그 시대의 차원속에서 갇혀서 살다 죽었다.
지금도 무지하여 사망권에 갇혀서 살아간다.
차원은 역사의 차원은 누구를 수종드느냐에 따라서 갈리어가는 것이다.
야훼! 알라! 이렇게 부르면서 수종드는 역사의 차원과 예수님! 이렇게 부르는 역사의 차원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다시금!
아버지! 하고 부르는 것과 내 사랑! 이렇게 부르는 것 또한 하늘과 땅차이의 차원인 것이다.
혼인잔치의 차원은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헌데 다섯은 무지하여 졸고 있었다. 깨어있지 못했다.
알아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만 기름을 준비하여 등불을 들고 혼인예식에 들었다.
기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름이란 역사인식에 대한 차원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구약 역사에서 신약역사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된 자의 인식차원이었다
자기 스스로 자녀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신약역사에서 새로운 역사로의 휴거 또한 그렇게 이루어진다.
신부된 권세에 대한 인식이 서있는 사람만이 새역사의 휴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차원을 생활속에서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휴거의 본질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지는 것이다.
차원!
그것은 인식안에서 다가서고 인식안에서 깨달아가는 본질에 대한 존재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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