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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을 되돌아 볼수 있는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차원엔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은 은밀하신 분이라고 성경 곳곳에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은밀히 나타나시고 은밀히 역사하신다
사명자의 옆에서 동행하고 계시면서도 결코 드러내지를 않으신다.


모든 것엔 하나로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것 같은데도 실상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왜 은밀하신 것일까?

근엄한 척 하시는 것일까?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보면 몇수 뒤를 볼수 있느냐에 따라 승과 패가 갈린다.


그래서 오래 참는 것이고, 오래 지켜보는 것이다

묵묵하게 흔들리지 않고서 물러나는 것 같으나 실상은 목적지에 한걸음씩 침착하게 내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6 vs 7 그 다음엔  66 vs 77 그리고 666 vs 777 의 역사를 펴시는 것이다.

결국엔 따라올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결국 상대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승리의 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밀히 역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은  순리로 역사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하여!
사람은 초심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행하다보면
방향을 잃지 않고 행하는 것이 되어서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이치다.

내가 행하는 방식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향이 같음으로 하늘과 일체되어서 땅에서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도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역사란?

그렇게 거창할 것이 없다.
단지 인간이 변함없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하늘 역사라 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하늘역사를 펴신 것이 어떠한 것이였을까?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들에게 돌이키게 하는 것이였다

화목제의 사명이란 단지  그것이었다.

은밀함은 인간의 차원에서나 은밀한 것이지!

하나님의 차원에선 하나씩 차분히 밟아가는 심모원려의 방책이라 할 것이다.

여기엔 근본을 강조하시는 생각존재체 하나님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근본 핵인 생각이 있기에 용액 한방울을 물속에 퍼트리듯이 풀어내시는 하나님만의 독특한 역사방식인 것이다.

풀어지고 젖어들어서 환경속에서 자연스레 동화되어 모든 것이 순리로 물들어가게 하신 뜻이다.

이것을 은밀하다고 하는 것이다.

때가 되어서 숲이 단풍으로 물들면 사람들은 가을이 왔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란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이다.
천국은 누룩의 역사라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나 여호와는 근본자라고 말씀하시는 연유가 무엇일까?

때를 따라 역사하듯이!
변화의 때를 맞추어서 주변 여건과 환경을 물들게 이끌어 오셨다.

그런데 그 변화란 근본에서 시작되어 왔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네 시작과 나중까지를 알파와 오메가로 역사하고 동행하였음을 깨달으라는 의미다.

모든 것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에 함께 하셨으면 끝까지 동행하시는 뜻이다.

이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쉬운 이치인 것을!

조변석개하는 인간의 마음이 이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기 때문에 하늘 역사는 늘상 더디게만 흘러온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중엔 처음 어떠한 마음으로 시작하였는지 되돌아보고 초심을 되새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에게 부합하는 자들이라 할 것이다.

역사란 이러한 사람들이 이끌어 왔으며, 그러한 사람들에게 동조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이루어 내는 것이다.

하여 사명자란 초심을 잃지 않고 늘상 한걸음씩 앞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결단과 무리를 이끌수 있는 신뢰를 보일수 있어야 하나니!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이 바로 신앙의 영역인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믿음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 너는 나를 믿느냐? /나 보내신 이를 믿느냐? ]

이것이 너무도 중요한 화두였던 것이다.

믿음이란 땅에서 사명자를 보고 판단하고 따름으로 시작되는 신앙의 역사다.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믿음의 신약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신약의 역사가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시작되고, 믿음으로 존재케 되는 것이다.


[ 의인] 이란 바로 [ 아들 ]의 다른 이름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인자와 군자가 다르지 않듯이!

종은 주인에게 순종으로 따르는 것이지!

주인에 대한 믿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종의 신분을 망각하지 아니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주인이 옳은 길로 행하지 아니할지라도 그것이 종의 굴레에선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이치다.

하지만!
아들은 어떠한가? 아버지가 행하는 것에 대하여 의논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건의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아들 역사를 펴시면서 예수께선 종처럼 제사상이나 차리지 말고!

아들로서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신 뜻이다.

기도함으로 대화하고 묻고 응답받으며 가는 것이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도 그 대화의 내용이 잘 드러나나 있다.

아버지께 이 길을 물릴수 있으면 그렇게 해주시고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 간구하신 것이다.

결국 근본자의 역사하심은 처음 하나의 생각에서 과정을 거치면서 그 생각들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하늘 앞에 영광이 되도록 하신 것이다.

헌데 이러한 과정들을 아주 은밀하게 펼쳐시기에 사람들은 처음 마음을 잊어버리고 다가오는 상황들을 타개하기에 급급해하는 것이다.

하여 하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은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인데..

그 은밀하신 역사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되돌아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확실히 믿게 되고 따를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