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를 이룬 사람이 있고, 이루지 못한 사람이 있다.
헌데 한명은 남편이고 한 명은 아내이다.
그러면 한 가정에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
휴거를 이룬 남편은 아내를 품고 포용하면서 신앙의 길로 잘 이끌어 줄 것이다.
휴거를 이룬 뇌로 깨달음을 얻어서 말씀도 잘 풀어줄 것이고!
그러면 아내는 너무 고마워서 감격하고 잘 따를 것인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이 휴거를 이루게 되면 세상 만물이 새롭게 다가오고 자기 삶에 대한 자긍심과 자기가 가는 인생길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래서 좀더 생각의 여유도 생기고 생각의 속도도 올라간다.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그 핵을 짚어내는 깊이가 한 차원 높아진다.
그래서 삶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기존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통찰과 분석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고 그들과의 대화의 차원도 높이고 싶은 것이다.
헌데 아내와 남편 둘중 한사람만이 휴거 차원이 올라가면 육은 그 반응이 사뭇 특이하다.
육은 모르지만!
영은 바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생떼를 쓴다.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무언가 모르게 휴거를 이룬 상대방에 대하여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올바른 이야기로 깨우쳐 주려 하여도 인정하지를 못한다.
신기하게도 이 부분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0장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한 사람의 영의 차원이 올라가면 그러지 못한 사람의 영은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원래 부부는 일심동체라서 끼리끼리의 차원으로 만나는 것이다.
헌데 불행히도 둘중 한 사람만이 각고의 노력 끝에 휴거를 이루고 차원을 높이면 그 집안은 성경처럼 바람이 그치는 날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도 그걸 바라시지 않을 것이다.
헌데 도인의 기질이 강한 사람!
깨달음에 목숨거는 사람!
한 우물만 파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성경엔 이상하다 왜 저런 표현을 썼을까?
그건 육의 상식으로만 이해하려 들기 때문이다
영계의 지식과 상식이 들어가면 성경의 그런 구절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글이 매니아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혹시라도!
이러한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분도 있을 터인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부부가 같이 공유하시는 것이 차후를 위해서 좋을듯 하다.
영성이 개성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가정을 뒤흔들게 되는 것이다.
생각의 차원이 다르면 같이 어울릴 수가 없다.
한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아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다.
영의 세계는 실력의 세계라서 친하다고 같이 어울려 갈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예수님도 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누가 우보좌/좌보좌 논하는데 누구던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 돌아갈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 세계는 헌금을 많이 한다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갈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아프리카 추장은 뉴욕시민들과 어울릴 수가 없다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같이 살다 가는 것이다.
구약인들도 신약인들과 절대로 어울릴 수가 없다
짐승들 잡어다가 제사상 차리는 신앙인들과 무슨 대화가 될것인가?
휴거를 이룬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 생각의 차원이 1천 2천년 4천년씩 갭이 발생한다
그 간극을 메꾸지 못하면 영원히 대화가 될수 없다.
영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기록한 대목이다.
아내의 자존감은 물질로 채워줄 수 밖에 없다
아이들 대하듯이 잘해주는 것이다.
품위유지비를 올려주고 건강식품도 챙겨주고..
안타깝지만 이세상의 인연은 그 차원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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