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가 온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사명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 심정의 길로 행하시며 가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자의 역사란 광명정대하며 무소불위하신 그 능력으로 이끄셨을 터이다.
그럼에도 정작 주가 가신길은 샛길로 피해서 도망치듯! 그렇게만 다니셨다.
심지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너만 알고 깨닫고 가라!
무슨 죄를 지엇길래? 그토록 숨어서만 역사를 펴야했을까?
그러다 종국엔 십자가에 못박히신 채로 숨을 거두셨다.
그게 그렇게도 기독교인들에겐 한이 되어서였을까?
많은 교회들이 재력과 권력과 명성으로 철옹성을 쌓았다.
그리고 관원 한명이 제대로 전도되지 못해서 주를 십자가로 몰았다는 강박관념에 수많은 관원들을 전도하여서 주만 오시면 언제던지 황금길을! 꽃길을! 보여드리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해서 지금의 기독역사를 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린 주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주만 오시면 된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타고 오시는 주를 맞기 위해서!
그런데 아니오 셨다.
그럼 그렇지! 사람이 어찌 구름을 타고 오겠어?
땅에서 오실 것이다.
그래서 이곳 저곳 다 뒤져보면서 주를 애타게 찾았다. 헌데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칭 그리스도라! 자칭 예수라 하는 미친 종교집단들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기나긴 신약 2천년 역사가 마무리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허탈함을 지나서 초연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돌아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유대인과 그들의 행동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학식을 찾고! 전통을 찾고! 형식을 찾는다.
조선시대 카톨릭 사제들이 피흘리면서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그 기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일단은 성전부터 어마어마하게 짓는다.
몇천억은 기본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던 그 아픔의 사연이 이 시대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인들이 그리 잘난 종이라고 으시대던 그 웃픈 상황이 지금 이시대 벌어지고 있다.
아들시대에 예수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자기가 아들의 권세를 주로부터 받은 줄도 모른채!
주의 종이 운운하면서 성전에서 거룩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헌데 이미 아들의 시대도 지났고!
예수께서 비유하신 열처녀의 비유처럼!
그런 신앙의 개념이 들어서야 함에도!
이시대엔 구약의 망령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역사의 길은 동시성으로 흘러간다
왜 그런 것일까?
인간의 생각 차원이 그리 쉽게 오르지 않기 때문이고!
자기 주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자체가 변화의 생각이고 변화의 실천인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4천년 동안 바뀌지 않는 것이지만!
주가 오면 그 생각을 사흘만에도 바꿀수 있기 때문이다.
주는 시대의 사명자는 그 사흘만에 생각을 바꾸어 줄수 있는 말씀을 그리도 숨어가면서 복음을 펴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숙명인 것이다.
철옹성같은 그들의 생각과 주관을 바꾸어주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가면서 험난한 샛길로 피해가면서 그 복음을 펴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신약역사의 종들을 아들로!
그 아들을 다시 상대체인 신부급으로 바꾸어가는 역사를 펴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은 태양처럼 비추이지만!
정작 그리스도가 가는 길은 역사의 샛길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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