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밸류, 네임밸류 등등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최후에 이름 하나를 남긴다
그것을 인사유명이라 하고!
하다못해 금수도 가죽을 남기니 호사유피라는 말이 있다.
물질의 가치도 남아지고 영의 가치도 남아지는 것이다
물질은 유한하고 영은 영원하다는 측면에서 시공간의 차원은 다르겠으나..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혼적가치관에선 다르지 않다
기억하는 것과 언젠가는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사고의 차별성이라 하겠다.
그래서 난 영원을 택하겠다
그럴지라도 나는 물질을 택하겠다.
무엇을 근본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
육 본위/ 혼 본위/ 영 본위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로 불리우는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은 물질본위로 창조하시고 그안에서 생존하게끔 가혹한 시련을 주셨다
그러던 인간이 어느날 각성하고 혼본위로 바뀌어가고 그 극의 차원에선 영본위로 홀연히 변화를 맞게 된다
그때즘엔 인간은 더이상 육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의식주를 초월하여 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영휴거라 부른다.
육신이 혼적차원에 이르면 육휴거라 칭하고,
혼히 영적차원에 도달하면 영휴거라 칭하는 것이다
육휴거와 영휴거는 동시에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인식의 지평선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대.
인간의 육신이 영의 세계를 바라보면 나아가 극의 차원에 이르렀을때 영휴거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영이 육신의 세계를 바라보며 육적실체에 이르게되는 것을 육휴거라 칭할수 있다.
육과 영은 동시성으로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세계 물질을 통하여 인간육체의 휴거를 강권적으로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런 물질을 추구하도록 하여 그 과정에서 희노애락애오욕 가각의 차원마다 아픔과 슬픔과 역경과 고난을 통하여 연단을 거치도록 수고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앞에서 평화로운 사람은 많지 아니하다
아마도 십자가 사명을 마친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늘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일상이 그런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신앙이다
일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그러하고!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표가 그러하다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의 삶은 어떠할까?
문득 하나님은 왜 물질세계를 창조하여 인간에게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하실까?
그러한 생각이 새벽이시간 들었다.
세상엔 당연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이 작위이고 필연이고 당위성이다
거기엔 인간이 의문을 품으면 우연이고 조건명제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황속에서 인류사고의 차원은 나날이 높아져가는 것이다.
구약의 역사는 신의 생각이었다
거기에 인간의 생각이 조금 가미된 것이 신약역사였다
그리하여 아들역사라 칭하였다
나름(?)의 발언권이 있었다
그래서 여수께선 십자가상 마지막 기도에서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기도하시고 이해가 안되지만 그럴지라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하셨다.
마지막 역사란 신부의 역사다
다연히 그만큼 수많은 의문과 방황이 있을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구약의 당위명제를 떠나서 조건명제로 전환된 역사의 차원을 가는 것이다.
해라!/하지마라! 이것이 아닌 것이다.
if ~
네가 ~라면...
이런식의 반응이 신부된 역사의 차원인 것이다
하여 개성이고 천상천하 유일한 사랑세계가 탄생되는 것이다.
그것은 80억분의 1 그 유일함을 추구하는 사랑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부란 사랑의 권세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사랑을 깨우치고 배워가고 학습해가고 터득해가며 경험하고 이루어가는 과정 그것이 마지막 역사 신부역사
혼인잔치의 역사인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