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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권 역사의 아픔

하나의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위해서 만나고 사귀고 만들어간다

그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 수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여 어느 순간에 완성체로서 사랑을 이룰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작이 사랑이었다.

헌데 이 사랑의 과정은 그 시작의 마음이 변화를 겪으면서 완성되기도 변질되기도 하는 것이라!


누구라도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정을 예로들면 자녀는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헌데 부부가 사랑이라는 목적을 잊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애인권 역사에서 형제권 역사로 변질되어가는 것이다.

형제권 신약의 역사는 너무도 무서웠다.

서로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서로의 목숨을 취했다.

십자군 전쟁이 불러온 그 참혹한 실상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신약역사의 아픔이자 한계였다.

가정을 꾸려오면서 왜? 이런 한계속에서 지속되어가는 것인지를 수없이 고뇌했었다.

신앙이란 삶속에서 그 시작과 끝 그 과정 전부를 거쳐서 존재하는 것이라서...

왜 사람들은 그 첫 사랑의 마음을 잊어만 가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2장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 가정을 위해서 서로가 노력하고 애를 쓴 결과이다
헌데 그 결과엔 사랑의 결실이 없었다.

신약역사의 전쟁처럼!

가정에서 부부과 총과 칼을 들고서 각각의 생각을 들이대면서 상처를 주었다

이미 그들에겐 사랑이 있지 아니한 것이다.
하나님께선 그 가정에 사랑이란 촛대를 옮기신 것이다.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그 가정엔 사랑이 남았으리라!

하나님의 목적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서로를 비방하고 상처주기에 앞서서 사랑으로 대했으리라!

도대체 우리가 아는 사랑이란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이 다르기만 한것일까?

우린 이러한 사랑중 그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있기는 한것일까?

우리는 아직 신약역사 2천년 그 주관권 상실된 사랑의 아픔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형제권 역사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서로를 잔인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 메시아는 이 형제권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구약 종의 역사가 지속되었고!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차원도 종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지 아니하시고 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화목제로서 사명이 아들권 역사로 형제권 역사로 이끄신 것이다.

헌데 이 아들들의 형제권 역사는 너무 가혹하고 비정하게 서로를 대하고 있다.

부부가 애인에서 형제가 되면 그 아픔이 너무도 큰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살면 서로에겐 그것이 상처가 된다.

형제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부부라는 동거의 상태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기독역사는 형제권의 역사인가? 애인권의 역사인가?
신약역사 2천년 망령속에서 믿는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똑같이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시대 사명자가 와서 이 아픔의 역사를 속히 치유해주셔야 이 세상의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생각차원이 형제에 머물러서 그 한계적 상황속에서 고통을 견디어 가고 있을 뿐이다.

부부란 그렇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돌보고 베푸는 그런 관계가 아닌 것이다.

부모에게 용돈 타쓰듯 생활비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법적으로 생활비를 주는 의무적 관계라면 도급계약의 법률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법률행위란 사적자치던 강행법규던 사랑을 찾아볼 주 없는 권리와 의무의 관계일 뿐이다.

이것이 결혼생활의 현실이다.

하나님께선 이것이 싫으신 것이다

그래서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와 나의 관계는 그 사랑의 세계를 열고 일체됨으로써 깊어져가는 존재적 사랑세계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일체란 부부의 일심동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생각차원에 있다.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가정생활도 신약권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에게 해주어야할 짐이고 의무이고 아픔일 뿐이다

사랑의 희락세계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시대가 아프고 병들어 있다.

사랑을 알지 못하니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권 역사처럼 가정에서 서로에게 바라지만 말것이라!

자기의 십자가는 스스로가 질 것이라!

상대에게 십자가를 떠넘기지 말고 서로가 사랑차원의 생각에 이르기를 권면하고 솔선하여 행할 것이라!

상대를 도움받을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수단시하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 전까지 지구상 곳곳엔 상처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시대 사명자는 사랑의 조상으로 사랑에 대한 실체로서 오실 것이라!

휴거역사는 형제권 아들역사를 애인권 신부역사로 이끌어가야 한다.

부디 인류의 이 사랑의 상처들이 온전하여 치유되기를! 회복되기를!

근본사랑에 눈을 뜨기를!

이 새벽도 사랑의 상처로 아파하는 인류에게 시대 역사의 평화와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