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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 미친사람

정상의 개념을 normal 이라하고
그 반대의 경우 abnormal 이라한다.

사람의 혼은 지.정.의 의 세 영역에서 감각으로 발현된다.

느끼는 범위와 영역이 다른 것이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서 서로 다른 견해/ 온도차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이란 사람의 마음의 일정 영역에서 스며들어서 상당한 차이를 초래한다.

우린 정상인인가? 정상인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수 있을까?

사람의 뇌는 때론 비정상적으로 한시적. 일정기간  더  나아가서 체질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니!

사람의 이성이란!

칸트 형님이 말했던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그 이성의 영역이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견지에서 근본을 알고 싶었고 알고 있는지를 되묻고 대화를 통하여 토론하고 싶었다.

아마 인식의 차이를 통하여 접근하고 싶었던 것이라!

사람이 오랜 동안 사귀면서 가까이 지내면 그 기간 만큼이나 소중하고 아껴서 대하는 것이 이성적 접근일 것이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그러하고!

자기가 낳아서 공들여 키운 자녀가 그러할 것이다

세월이 깊어질 수록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그리하여야 할 터이다.

이것이 이성이란 영역이다. 그리고 정상인의 뇌반응인 것이다.

그런데 다들 그러한가?

이번엔 이성이지만 다른 영역의 이성을 논하여 보자!

남과 여  다른 두 성별이 호기심으로 다가와서 사랑이란 감정으로  영역을 형성해간다

뇌에서 그렇게 인식한다.

헌데 감성적 영역에만 치우쳐 있었을까?
아니면 피가 안섞여서 타인이란 고정관념이 있어서 였을까?

10년 20년을 살았다. 가족처럼! 핏줄처럼!

그런데 어느 한순간 그 사랑, 감성의 영역에 감정이 바뀌어갈때 이 세월을 망각하고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 미움과 증오로 바뀌고 더 나아가면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는 차원까지 이른다

이정도면 철저히 타인이 된다.

그래서 하루 일주일 한달 만나고 사귄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더 호감심을 가지고 급기야  그 상대와 다른 가정을
꾸리기까지 한다.

도대체가 말이 되는 스토리 전개인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이러한 행태란 무엇인가?

더 근본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부부가 서로를 이렇게 방치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이혼율이 50%가 넘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절반은 비정상인들 이다.

배우자가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고 순간 순간 적그리스도 대하듯 나를 대한다 할지라도...

나는 홀로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는 정상인 인가? 그 세월을 동행한 사람에게 이성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그것이 정일가? 의리일까? 아니면 보편적 인류애일까?

이러한 것들중 그 어느 하나라도 배우자에게 적용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정상인이라 할수 있을까?

나는 정상인의 영역에서 존재해가고 있는가?

통찰하고 바라보며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역이 죽어있는 개인/가정/조직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어 할 수 밖에 없다.

깨달은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짧게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지마라! 그렇게 바라보지 마라! 그렇게 대하지 마라!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기에 깨달았기에!

하지만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는다 두루뭉실하게 조언할 뿐이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고 인식불능의 상태에 있기에 지적이 무용함을 아는 것이다.

나는 정상인이라고 주장 할 수 있겠지만!

깨달은 사람과 10분만 대화하면 본인이 비정상적 사고를 해왔음을 금방 알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러할까?

근본을 모르고 근본에서 벗어나 선을 넘어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비정상적 사고를 해왔기에 익숙해져서 상식의 선을 한참이나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해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기에 그러하다.

결과에서 상대를 대하고 결과로 판단하고 결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원인에 있지 아니하다.

감정이란 결과의 산물이다.

원인과 과정과 분석을 거쳐서 사고하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이란 이성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인데...

서두에서 사람의 이성이란 마음의 어떠한 차원적 모습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는 그 사람의 행위가 어떠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법도 그러하지 않은가?

의도 : 선의/악의

이것이 뿌리인 것이다.

무엇을 목적하였는지가 중요하다.

부부가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어떠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에게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에러이다.

생각의 오류란 근본의 선을 넘어서면서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다.

자녀도 그렇다.
부모란 생명의 근원이고 그에서부터 양육과 도움을 받아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아로서 독립을 이루는 나이 성년이 되면  새로운 양심의 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두다리로 뛰어 다니는데 어머니에게 업어달라는 모지리 아이가 정상인가?

아니면 스스로 음식을 먹을수 있는데 입만 벌리고 먹여달라는 자녀가 정상인가?

부부도 그러하다.
처음엔 역할 분담이 있고 그 안에서 가사와 경제활동이 나뉠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서로가 같이 공유해가는 것이다.

가사던 경제활동이던...

이런 부분이 협치가 되어야만 서로에게 근본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요구하기 보다는 서로의 부족을 채워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부부란 인생의 동반자다.

같은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근본을 되새겨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방법도 모색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안식이 있을까?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안식이란 없는 것이다.

그 순간까지 인간의 뇌도 활동해야 인간의 이성으로 존재해 갈수 있다.

감정으로 기분으로 결과로만 서로를 대하는 인간의 관계는 결국 파탄으로 치닫게 되더라!

나이 40 적은가? 나이 50 부족한가? 나이 60 졸혼을 생각하는가?

다 헛되고 헛된 생각이다.

근본을  벗어난 인간의 행위는 짐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남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