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란 모든 존재물에 대한 나의 생각태도다
어떠한 스탠스를 가지고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다면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할 터이다.
알라와 여호와 개념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쪽은 아브라함의 장손이고 다른 한쪽은 차자이다
이것이 팩트이다.
헌데 다른 인식에서 바라보면 ..
한쪽은 본처의 자식이고 다른쪽은 신분이 다른 종으로부터 태어난 첩의 자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첩으로부터 태어난 자녀보다는 본처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섭리를 택하셨다.
그래서 같은 하나님을 믿고서도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어릴때 쫒겨나 배운게 많지 않았고, 그 어미의 품성이 그러했기 때문인지?
좀더 과격한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하나님은 좀더 과격한 모습으로 인식된 것이다.
내가 믿고있는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실상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존재자이신가?
어떠한 교파가 태동할 때엔 천모 성령님의 지극한 보살피심이 있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 치유의 은사가 차고도 넘쳤다
그 힘으로 하나의 교파가 무럭무럭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성장하면 말씀위주로 전환되어 간다.
마치 어릴적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이유식을 할 때가 되면 젖을 안먹이고 밥을 먹이는 것이다.
그때쯤엔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깊은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때도 그 당시에도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많이들 혼란스러워 한다
심지어 그러한 역사를 펴는 사람들도 그렇게 흘러간다.
자기가 믿는 사람이 예수다.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말씀을 받아온 사람도 그렇게 착각한다.
일체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신이 감동시키는 것이다
너는 나의 육신이다. 너는 나와 일체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고, 어느 시점에선 폐해가 발생한다.
당연히 역사를 펴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들도 전환을 제때 하지 못하면 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 성령님 성자 다 따로다.
성자와 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은 깊으니 성자와 예수님은 동일선상에서 인정하고 넘어간다.
그러면 결국 시대의 사명자도 예수그리스도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그의 심정과 사명으로 오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께서 다시오신다는 하신 말씀이 육신의 부활로 오해되는 것이다.
한번 죽은 육신은 부활할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볼진대 세계 복음화에 큰 획을 그었던 굵직한 교파들로선 다 이러한 내홍과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시달렸다.
관건은 얼마나 깊은 핵심적인 말씀을 가지고 역사를 펴왔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이러한 12지파에게 각각의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교파에게 마지막 사명을 주셨을 것이다.
서례요한에게 미리 전환의 말씀을 주시고 그리스도가 올때까지 예비하라고 전초자의 사명을 주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도 그런 역사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헌데 작금엔 다들 자기네 교파가 핵심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기가 따르는 자가 바로 그러한 사명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서로 조심조심 믿으면서 따라가는 실정이다.
신앙이란 기적과 표적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물질의 축복도 그러한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말씀에 대해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에 대해 배워가고 깨달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라고 그리도 가르치는 것이라!
말씀을 중심하고 따라간다면 어디에 있던지 시대를 깨닫고 어떠한 말씀들이 선포되어 가고 있는지를 각성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때와 지금 시대는 너무 다르다.
인터넷/ 클라우드 /구름이다.
못들었다 못배웠다 몰랐었다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도록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각자의 교파는 그 사명에서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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