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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적 역사

신과 인간의 인식차이가 극명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인간사는 서로 대화로 소통하여 합치에 이르러 평화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나!

신은 인간과 대화하지 않으시고 단독으로 결정하신다.

그것이 공의이고 평화롭기 때문이다.

마치! 군대에서 개개인의 의견을 중시하기 보다는 정해진 룰대로 생활할때 전체의 평화가 공존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명자의 인식을 고려하여 사명자의 기도를 들으시기도 하지만!

인식의 평화가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때문에 존재하기 힘든것일까?

생각이란 서로 다른 측면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각존재체들의 세계가 영의 세계다.


평화로운 인식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평화란!
평화로울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의 가능을 이루기 위한 차원세계가 열린다.

하나님은 평화롭지 않은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고된 역사의 섭리를 펴고 계신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사무엘상 6장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영광의 주와 고난의 주를 다이루셨다.

요한복음 19장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마태복음 27장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처럼! 십자가 역사로 끝나게 된 것과
또 하나님께서 이를 예언하신 뜻은 어디에 있을까?

아담과 하와 그리고 타락천사의 삼각관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인식!
루시엘이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인식
하와의 인식 그리고 아담의 인식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인식안에서 형상화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강권역사는  인식의 합치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신묘한 섭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인간이 지닌
평화롭다는 것의 감성과 신의 그것은
사뭇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땅에서 평화를 추구하나
신은 존재세계 안에서 공의를 추구하신다.

내 인식안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과
뜻안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하나를 항하여 간다.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여 인식하게 되는 섭리인 것이다.

사명자들의 인식은 극한으로 발산되었다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하나님의 뜻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명자의 인식이고 권세이다.
하나님을 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답을 찾았다고 하면 문이 닫히고
과정을 살피려 하면 보이는 문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과 소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