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ow a stone without a sin !
간음한 여인에게 돌팔매를 하고 있을때 예수께서 그 현장으로 가서 땅바닥에 글귀를 쓰셨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다들 물러갔다.
세상에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의원은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그 심정적 사상의 세계를 통하여서..
우리는 그 내면에 흐르는 굳건하고도 의연한 예수님의 생각세계를 느낄수 있었다.
사명을 가지고 오셨다.
세상이 그러하고 사람들이 그러함을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사명을 받고서 오셨기에 확신에 찬 한 마디를 하신 것이다.
그러한 예수님이 너무 근엄하고 멋있기까지 하다.
확신에 찬 한마디를 하실때마다 제자들은 아멘! 하면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예수를 믿고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교파마다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 사람의 모양과 형상을 통해서 실체화되고 가늠되어지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망령되이 나무나 돌 태양이나 달을 섬기고 신이라 믿고 따를 것이다.
우상숭배 이것은 인류가 혼적지성을 얻기 전 단지 육적 본능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섬기었던 근성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이마저도 기특하다 하시고 그에 응답하여 주시곤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아담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혼적 각성의 역사를 펴신 것이니!
그래서 그가 먹어야 할 것과 먹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해 분별할수 있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 그런데 루시엘이 하나님의 말씀의 떡에 손을 댄 것이다.
사탄은 항상 그렇다.
가롯유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손을 댄것이다.
그가 메시아가 아니다. ]
육적 본능에 지배를 받았던 인류에게 혼적 분별의 인식을 심어주셨던 것이다.
이를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씀하셨다.
하여... 인류의 원죄는 이러하거니와.
사람들은 그 말씀을 어떠한 형태로던지 지키기 위하여 관습이던 율법이던 규율이던 그러한 형태로서 추구해왔던 것이다.
성경엔 선악을 알게하는나무를 지키게하기 위해서 에덴 동산 동편에 화염검을 두신 것이다.
창세기 3장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러한 원죄를 저지른 여인에게 예수님은 심판치 않으시고
너희들도 그러한 죄를 범하여서 내가 왔노라!
그리고 너희도 회개하여라!
결국 시대 메시아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죄를 시인치 않을 수 없으며, 형제의 죄를 논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시고 타락된 인류의 근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 하셨던 것이다.
누가 우리의 죄를 정죄할 것인가?
하나님은 예수님은 죄를 지적하시기 보다는 회개하기를 바라셨고
심판하시기 보다는 구원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분별만 하라셨다.
알지 못하기에 무지하기에 정죄하려는 것이라!
깨달은 자는 보는대로 듣는대로 판단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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