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배우고 하는 사람은 즐길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재미도 있다.
농구를 잘하는 사람을 갑자기 축구를 시켜놓으면 어리버리하고 당혹스럽고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여유가 사라지고 한동작 한동작 움직이기 급급하다.
인생을 배우고 살아가는 사람과 닥치는 대로 돌진하고 달려가는 사람을 비교하여 본다면 ...
인생길을 가면서 여유를 누리고 가는 사람은 당연히 배운 사람일 것이다.
성현들과 위인들과 종교와 사상가들의 수많은 생각의 길들을 접하면서 왔을 터인데...
마음에 담아놓은 / 생각에 그려놓은 길들이 얼마나 될까?
익숙한 길을 갈 때에는 여유가 있으려니와 초행길을 갈때엔 신경이 곤두서고 다급하기만 할 것이니!
주변의 풍경과 감상은 어디에서 찾아봤을까?
지금의 배우자를 보면서도 결혼 초기로 돌아가면 이렇게 저렇게 댜해주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어떤 면에서는 서로에게 무디어진 현실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서로가 차원으로 바라보고 대하면 좋은 사랑으로 흐르겠지만!
자기한계의 시공간을 주장하고 버티기만 한다면 자기만의 우주에서 영원히 머무를 것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공간에서 나올수 있는 키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능자 하나님도 아담의 마음 문을 열지 못하셨다.
그게 이치고 법칙이기 때문이며 그게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창세기 3장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숨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 와서...
배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목적이 무엇인가?
천국의 길을 가려는 사람은 배워야 천국을 갈수 있다
열반에 이르려는 사람도 배워야 도달할 수 있다
무극대도를 이루려는 도인들 또한 배워야 이치에 이를수 있다.
여유란 알기에 배웠기에 생기는 마음이다
마음의 상태가 그렇다는 뜻이다.
이젠 배움의 의미가 조금 다른 차원으로 다가와야 할 시대이다.
한때는 초등학교도 못나와서 최근까지도 대학을 못나와서... 무시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원하면 사이버대학이라도 졸업을 할수 있게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움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느냐는 의미다.
저 사람은 배웠다? 배울만큼 배웠다.
이러한 말의 의미가 가방끈 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도 대학원 석사 졸업이긴 하지만!
학부졸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배운다는 것은 어떠한 길에 대하여 심도있게 연구하고 분석해서 자기 개성의 길을 밝혀가고 있는 척도로 가늠하는 것이 어떠할까?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일수 있다.
개성의 시대를 맞이하여서...
보편 상식의 관념하에서 개성의 길을 어느정도 개척하여 일가를 이루어왔다면
그러한 사람을 두고서 배운 사람이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자기 개성의 길을 모르는 사람들은
타인의 길도 잘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폄하하기도 하더라!
사람은 첫째 성격을 파악하여 알아가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 사람이 지닌 생각의 한계를 알아가는 것이다.
하여! 사람을 지혜로 대한다 함은 그 사람이 지닌 생각의 한계를 제대로 알고서 대해주는 것이라 본다
개성의 길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부를 지닌 정도가 좌우하는 것은 아니며, 마음에서 생각에서 여유는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리하여 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가 중하니!
이것을 창조주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의롭게 산다는 것은 뜻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이고 창조주의 뜻은 개성된 진리체에 대한 기대섭리다.
인생의 길, 여유, 개성, 창조주의 뜻, 의를 이루는 것
이러한 개념언어들이 우리들의 실존속에 자리잡고 매일 매시간 창조주와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다.
배웠다 여유있다 개성이 있다 신앙심이 있다.
삶과 신앙은 이러 행위를 통하여 일체를 이루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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