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땅에서 푸는자 화목제

마태복음 16장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메시아는 땅에서 풀려고 하나님이 보낸 사명자이다

그가 사명자라서 땅에서 매인 것을 다 풀고 승천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9장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사명자의 역할은 풀어내는 것이다.
어떤 매듭을 풀려는 사람이 없기에 굳이 육신쓴 사명자를 이 땅에 보내사 하나님의 뜻대로 풀어내시는 뜻이다.

마태복음 26장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대로 풀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때 풀어지는 일들이 있다.

하나님의 일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라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대로 화목제의 길을 가신 것이다.

의인의 피가 필요로 하였기에 하나님께선 그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펴기 위해서 이 땅에 오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하나님적 차원에서 이루고 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아들 사상은 하나님이 그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생각이고 사랑이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신약 2천년 역사가 흐르기까지 자녀권의 축복속에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해당되는 신부되는 권세를 주셨다.

신부개념의 역사다.
열처녀가 혼인잔치를 이루는 시대다.

신부라는 개념이 육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제대로 된 인식이 될수 없다.

아들도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란 고정관념에 절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신약 역사가 황폐해져만 왔던 것이다.

신부란 그 사명적 역할을 의미한다.

신부가 신랑의 마음을 모르면 안되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알아서 스스로 하나님과 개성적 1:1의 사랑을 삶을 통해서 완성시켜가는 역사의 이름이다.

신부역사다.
신약은 아들역사다
구약은 종역사다.

시대 사명자는 그 시대 하나님의 사상에 맞추어서 지상에서 풀어가는 사명을 해야만 제대로 된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신부시대에 아들을 논하고 종을 운운하면 하나님의 사상에 부합하지 못할 뿐더러...

성밖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며 슬피울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영의 모습인 것이다.

전혀 다른 진리를 주장하고 나타난다면 그것은 비진리이거나 정말 새로운 역사인 것이다.

흐름으로 보아야 분별할 수 있다.

종의 시대  ---> 아들 시대  ---> 신부 시대

종의 권세 ---> 아들의 권세 ---> 신부의 권세

흐름을 느끼고 파악하고 인식할수 있어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

아들 개념이 구약 4천년을 뛰어넘는 천재적 발상이고,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는 천문학적인 발전이다.

근데 이것이 2천년을 지나면서 어떤 시대적 문화적 한계상황에 맞딱들이게 되었다.

더이상은 형제권 사랑으론 해결되지 못하는 전인류의 문화적 사상적 문제들이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같은 국가도 같은 민족도 같은 인종도 아닌데 왜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사상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사랑의 모양과 형상이 신부의 그것이 아니고선 해결되지 못할 문제들이 온세계에 도처에 깔려있는 것이다.

인류의 사상적 토대가 슈바이쩌 박사나 마더 테레사의 그것보다 나아지지 않고서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 그리고 미래가 존속될수 있을까?

하나님께선 인류에게 그 사상적 근거와 해법을 시대 의 역사를 통하여 풀어주려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