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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적 감사의 세계

어린아이는 맛있는 과자를 친구나 부모에게 주면서 성의를 표한다.

어린아이에겐 군것질 거리가 지고한 선일수 있다.
그리고 좀더 자라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알고 음식을 대접할 줄도 아는 것이다.

그러다가 더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경제적 안정을 누리면 그때엔 부모가 오래 계시지 못함을 깨닫고 통장을 만들고 한푼 두푼 모았다 해외여행도 모시고 가더라.

사람이 태어나서 여러가지 다 아쉽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겠으나!

이곳 저곳 다 가보지 못하고 국내에서만 살다 떠나는 것도 참 아쉬운가 보다...

그래서 호주도 가보고 유럽도 가보고 하와이도 가보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는 그나라대로 못사는 나라는 또 그곳대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겪고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재미다.

동남아를 돌아보신 아버지의 한마디는
[ 가난한 나라는 가보아도 별 새로운 거리가 없더라
잘사는 나라를 여행보아야 겠다 ]

이처럼 사람들의 세계는 새로운 것에 대한 경험을 하고싶은 마음들로 이루어가는 것이더라!

매일 같은 찬에 식사를 하는 것도 힘든일이고 무미하기 때문이다.

맛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떠할까?

전능자는 생각의 세계가 남다르시다.

그 생각의 맛이 존재하는 것이다.

구약 4천년을 바라보고 지켜오셨다.
그래서 이젠 그만하자! 소잡고 양잡고 그러지마라!

니네도 이젠 떠돌아다니던 그런 유목민족의 삶을 벗어나서 성전도 지었고 국가도 이루었는데 어린시절의 그 차원을 벗어나서 좀더 신령하고 깊은 생각의 세계에서 만나자!

그리하여 이젠 주기도문을 줄 터이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나에게 나아와라!

예수그리스도를 세웠으니 그가 문이고 진리고 길이되어 나에게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너희들의 육적성전이 되고, 신약역사를 이룬 예수는 너희들의 영적성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사단에게 그 육신일 내어준바 되었기에...

그들은 지금도 육적성전 예루살렘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영적성전 예수그리스도를 그들 마음속에 찾을때까지 영영히 되찾을 수 없는 사연이다.

이스라엘은 언젠가는 예루살렘성전을 찾겠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 작업의 연속이다.

알게모르게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등 주변국을 자극하고 분란을 조장시켜왔다.

일본이 하고있는 짓과 같다.
일본은 30년넘게 차지했던 한반도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자꾸만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언젠가는 군사력으로 한국과 분쟁하여 한반도의 영해를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하고 그 영토에 대한 주권침탈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 이처럼 시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유대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고!
몽학선생인 율법에 따라 하나님과는 멀어져 가고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대인이나 이슬람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구약식이기 때문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더이상 중심종교가 아닌 것이다.

아들이 아무리 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효자라 할지라도 그건 아들차원의 헤아림일 뿐이다

한이불 덮고 24시간 친밀하게 생활하는 신부와는 전혀 다른 클래스다.

하나님은 너희를 신부로 대하여 그 애인권의 희락과 생각의 세계에서 매일 대화하며 일체된 영육실존세계의 맛을 누리시며 실존하시려는 뜻이 있다.

영의 세계에서만 인간영혼이 늙어서 죽고나서 천국에 오기를 기대하시는 뜻은 아닌것이다.

살아서 하나님과 실존하고 같이 누리시고 싶은 생각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다름같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다.

최고의 감사는 구약식이 아니고 신약식도 아니고 새시대의 신부차원의 생각에서 비롯된 감사다

그 감사를 드리기위해서 배우고 깨닫고 신부로서 갖추어 가야할 생각의 세계가 있다.

그 시대를 깨닫고 배우고 가는 영혼과 신약차원 아들 마인드로 존재하다 가는 영혼과는 가는 곳도 다르고 누리는 것도 다르며,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기회도 다르다.

블랙홀을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하고 배우고 연구하듯이!

하나님과 새시대 중력권의 역사도 그러하다.
이치의 눈과 생각으로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