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란 뿌리에서 줄기로 그리고 가지로 나아가 열매가 맺힌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란 근본 뿌리에서 정신이란 줄기가 자라고 그에서 생각이란 가지에 열매에 맺히는 것이다.
도의 세계란 이 근본을 논하는 것이다.
도란 사람의 마음이란 뿌리를 성장시키고 관조하는 과정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음밭이란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근본이다.
사람의 마음인 근본에 대하여 여러 토양으로 비유하시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는데...
이 근본인 마음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야 정신과 생각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생각존재체인 삼위의 하나님에 대하여,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헌데 너무 무지한 족속에게 마음을 깨우쳐주고 실존세계를 납득시키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마음이란 선량함을 기본으로 자라간다.
악인에게 악한마음이 성장하여 간다고 표현할 것인가?
아니다 선량함을 잃어가는 마음이란 성장이 없고 지속적으로 망가져가는 터젼일 뿐이다.
그런 마음이란 더이상 마음이 아니고 악령들의 놀이터일 뿐이다.
주체성과 자아를 상실한 폐허인 것이다.
인간이 올바른 마음을 기본으로 정신세계와 생각세계가 일체로서 실존을 이루어갈때 삼위일체의 신성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서 신학이 나오고 삼위를 이해하는 단초가 생기는 것이다.
일체란 원리는 이러한 과정을 답습해가면서 습득되는 진리인 것이다.
천즉인, 인즉천이란 도를 깨우치고 자아를 형성시켜 가면서 마음과 정신과 생각의 실존세계를 터득해가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안에 하늘이 있고 하늘의 모습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원리다.
삼위일체를 연구했던 신학자들은 무엇을 느끼었기에 보이지 않는 실존세계를 파고 들었을까?
신을 하나님을 만나고 말겠다는 노력과 의지가 있었다.
본체를 보았다니 분체를 보았다니 하는 것들은 의미없는 간증일 뿐이다.
보았다는 것은 느끼거나 그 원리와 이치를 터득했다는 것의 표현일 뿐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 신앙을 한다는 것 그 근본의 원리와 이치를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인 것이다.
나무의 성장이치를 보고서 내 마음이란 뿌리와 정신이란 줄기 그리고 생각의 가지가 뻗어가는 것을 관조할때 일체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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