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령과 감사의 제단 ]
출애굽기 3장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령이 세계에 들어가려면 자기의 인식과 주관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 인식의 한계속에서 다른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아니한지라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가선다.
여호와의 사자를 보긴 보았으나 마음에 의아함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식으론 정말 불꽃이라면 나무가 타야 정상인 것인데 그렇지 아니한지라!
그를 두고 착간인지 정말로 여호와의 사자가 맞는 것인지를 의심이 생긴 것이다.
거룩하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실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의 신령함이 그의 마음에 드러나는 영적현상을 거룩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내 마음에 신의 모습이 형상화되는 이치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들은 그 내면을 잘 이해하고 인식하기에 형상화에 최적화되고 시도 잘 쓸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 하나님 보좌앞에 서면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그때에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느낌을 마치!
천사들이 [ 거룩!거룩! 거룩하시다! ] 라고 말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영의 세계는 자신의 마음으로 투영시키는 실존세계이며, 실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실존이라 함은 혼을 일컬음이며, 실체라함은 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감사라는 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초월적 의지의 존재표현이다.
자신의 의지라함은 육의 인식이고 초월적 의지라함은 영의 인식이다.
육도 영도 나라는 자신이지만!
육신의 인식을 의지라 부른 것이고,
영혼의 인식을 초월의지라 칭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면 감사보다는 의구심이 생기고,
현실을 벗어나면 내면에 신령함이 싹트고 진정한 감사가 떠오른다.
기도를 깊이 하면 신령함에 이를수 있고, 그 인식의 상태는 초월적 의지로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띠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내면이라는 거울로서 비추어 깨달아 가는 것이다.
빛이란 무엇인가? 실체세계는 빛의 세계다.
상대를 빛으로 조명하는 세계를 실체라 부르고, 자신의 내면에 투영시켜서 인식할 수 있는 세계를 실존이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통칭하여 유무형실존세계라 부른다.
실체는 실존을 부르고, 실존은 실체를 낳게 된다.
결국 진정한 감사의 제단에 이를수 있는 길이란 신령에 이를수 있어야 가능하고,
신령에 이르려면 자신의 주관과 인식한계를 초월할수 있어야하기에!
신령함에 이른 의지를 초월적의지라 칭하는 것이다.
모세에게 초월적의지, 영혼의 의지를 요구하신 뜻이다.
훗날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총 2번에 걸쳐서 받게 되는데..
한번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우상과 술취함과 방탕함에 분노로서 십계명을 깨트려버린다.
그것은 모세가 느끼고 내면에서 말씀으로 형상화시켰던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분노함으로 깨버린 것이다.
모세의 경솔함이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초월의지였지는 논점이 있는 부분이다.
말씀이란 받을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네가 나를 너의 내면으로 비추어보기 위해선 네 마음의 신을 벗으라! 말씀하신 것이다.
종의 입장에서 여호와를 대면하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고 도전의 문제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라 할지라도!
능력과 실력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낼수 없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는 것은 사명자의 역할 이지만!
그를 따르는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차원도 중요하다.
예수님의 시대십자가는 말씀을 더이상 전할수 없는 상황의 시대인지라!
결국 말씀의 역사를 더는 펴지 못하고 보혈로써 그들의 여혼을 사탄에게서 구해내는 것으로 신약역사를 결론 낸 뜻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깨트려버렸던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처럼 중대한 사건이다.
하지만! 짐승의 차원에 머물게 하면 다가올 신약역사를 펼수 없기에!
다시금 모세는 신령함의 극에 이르러 십계명을 다시 받게 된다. ]]
그 능력과 실력이라함은 인식의 문제이고, 자기주관을 벗어나려는 초월적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어떻게 하나님과 일체되어서 사랑의 삶을 살아갈수 있을까? 그 고뇌가 항상 따르는 것이다.
시간, 자료, 기술이 있어야 성공할수 있다.
성공하는12가지 법칙!
열심 노력 타산
시간 자료 기술
늘 생각 늘 바라봄 무리가운데 법칙
사랑 진리 사명
샘께서 섭리사에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없다. 말씀하시는 연유를 이해해보면!
샘께서 글을 직접 쓰시면 될 것이나!
첫째 시간이 필요하시고, 해당분야의 말씀자료를 구해야하고, 그 분양의 내용을 이해하고 표현할수 있는 기술, 즉 감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휴거를 이루었으니! 제자들이 여러분야에서 증거의 글을 남길수 있어야 하는 뜻이다.
심화학습
출애굽기 24장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사십일 기도의 기간 금식을 했는지는 기록되어있지 아니하나, 예수님의 광야 금식기도 40일과 같음.
출애굽기 32장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출애굽기 34장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깍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28. 모세가 여호와와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신령함에 이를수 있는 내면의 상태 그리고 그러한 상황인식에서 나오는 감사의 제단!
감사란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삶속에서 감사가 죽어있으면 말씀도 죽어있게 됩니다.
살움직이는 운동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말씀을 들어도 읽어도 그 역사하는 힘이 약해지게 됩니다.
말씀을 받기위해서는 삶에서 감사가 살아있어야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에 이르기 위해선 신령함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입니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