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든 것을 선생님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이거 머에요? 선생님 저건 머에요?
인간 본연의 가장 순수한 모습중 하나일 것이다.
생각하고 의문이 들고 알고 싶어하는...
또 선생님이 행하는 언행들을 듣고 보고 따라한다
가정에서 선생은 부모이다.
자녀는 부모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한다.
이처럼!
인생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고 한사람 한사람 대하는 예수님의 언행은 따르던 자들에겐 배움의 삶이 되었다.
내게와서 배우라! 예수께선 늘 말씀하셨기에!
제자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 말씀에 목매었다.
그리고 십자가 그 날이후 제자들은 그들에게 매일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허탈함과 낙망함에 하루 하루 실의에 빠져서 살아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간증을 하였다.
이런 의문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깨우쳐주셨다.
그 사건은 실의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큰 기폭제가 되었다.
스스로 깨달으려 노력하고 증거하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들에게 가르침을 줄수 있겠다.
또 기도하라! 하셨으니!
기도하면 깨우쳐 주시겠구나! 그리고 동행하시는 구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예수님 부활후 신약 2천년 역사를 이끌어왔다.
당대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던지? 무엇을 행하시던지?
늘 병아리처럼 어미 닭을 쫒듯 졸졸 따라다녔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걷고 같이 심방하면서 그리고 같이 말씀을 증거하면서 그렇게 따랐던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그러한 일들이 다시 일어날수 있을까?
인생의 스승은 참으로 없구나!
오죽했으면 정법이란 무속인이 일국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우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수많은 기도교, 수많은 카톨릭, 수많은 불교도 등등
한 나라의 기강이 이토록 흐트러지기까지 우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절절함이 어느때부터 사자진 것인가?
요한복음 13장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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