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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하여..

실존세계의 문을 열다.(신약의 믿음주관권)

실존이란 믿으면 있고 믿지않으면 없는 것이다.
사랑이란 본디 그런것이다.
마음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면 없던 것도 실체화되고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에서 싫어해서 멀어지게 되면 열기도 사그라들고 언제 있었는지 조차 뇌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실존이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니
이를 선각자들은 일체유심조라 칭하며 사람의 마음세계를 설명했다.

천국이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천국을 창조하시기 위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일먼저 하신일이 인간의 창조다.

물론 비조영의 세계와 비조영을 창조하신 것은 논외다.

그런데 아담/하와가 실존세계인 생명나무의 길에서 탈락되어버리자 인고의 4천년 시간이 흐른후에 후아담인 예수님을 보내사 재차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예수님이 실체로 이룬것은 거의 미비하다 할것이나 실존세계의 문을 여신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한복음 19장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신약주관권의 천국을 다 이루신 것이니!


누가복음 12장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그들에게 천국이란 현세에서 이루어지고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고 그런 저차원적 육적 신앙관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했다.

그 일례로서  
사도행전 23장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이런 현실은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길을 열지 못했기에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그 차원에 머물렀던 것이다.

4천년간 마음이 죽어있었기에 마음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느낄수도 깨우칠수도 없었다.  

그런 터전에 예수님이 오셨으니!

예수님은 마음이란 세계를 깨우치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되지 못한 마음세계를 깨닫기위한 구도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사명선포 이전의 사생애기간이 바로 생명나무의 길을 열기위한 몸부림의 시간이였다.

아마도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마음공부를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시대때 티벳의 경전엔 벽안의 푸른 승려가 공부를 하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예수님이란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구촌을 구원할 사명자라면 그런 경험들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본디 마음이란 동양적인 것이다.
서양은 하트(심장)이라 유물론적 어휘를 사용한다.

햐여튼 어찌어찌하여 예수님은 사상애기간 마음세계를 깨우치시고 생명나무의 길을 열기위한 본격적 행보에 들어가신다.

그것이 바로 실존세계다
하여 마음으로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이를 믿으라는 말씀을 설파하신다.

요한복음 5장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결론은  믿음이란 실존의 영역이다.
믿지 아니하면 실존세계의 문을 열수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인간의 뇌마음을 창조하기 위함이셨다.

천국이란 영적파장의 세계이니 그러한 파장을 인간의 뇌를 통해 창조하시기 위함이였다.

인간의 생각행위들은 선과 악의 행위대로 혼의 세계에 투영이 되며, 인간 개개인들의 믿음의 주관권대로 나름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것이다.

천국이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지말란 말씀의 의미는 이러한 맥락에서 메시아가 이루어가는 뇌천국을 두고서 하신 말씀이다

신약천국은 믿음과 순종으로서 개별적 차원적 천국이 아닌 집단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천국이다.

성약의 천국 주관권은 개성과 진리의 조화세계다 개성이 드러나고 자체로서 진리를 이루어가는 창조적인 사랑의 세계다.

# 사랑이란 인식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한다.
바라보는(인식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으니 하나는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신약을 사랑의 천국이라고 하지않고 믿음천국 실존세계라 부르는 이유다.


요한복음 16장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아래 성경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무엇인지를 알수 있다.

요한복음 7장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즉, 아버지로부터 와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인정하는 그것을 의의 기준으로 삼으셨다.

당대 12사도들 또한 예수님 십자가 그 순간까지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의의 기준은 우편강도의 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누가복음 23장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12사도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에대해 깨닫지를 못했으나 우편강도는 12사도들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확실하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온전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