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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라


한 사람이 한 생명을 살릴수 없고,
한 사람이 한 생명을 죽일수 없다.

마태복음 18장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우리는 생활속에서 490번을 지나 401번째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게 된다.

그 안에서 살의도 느끼고, 그 안에서 사랑도 깨닫게 된다.

그 살의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누구는 가인처럼 살인을 하고,
누구는 그르스도처럼 십자가 사랑을 실천한다.

인간의 단면은 가인이고, 다른 한면은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로 휴거되어가는 삶을 목적하고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이탈하면 가인으로 남게되어 구시대적 사고와 삶에서 사망으로 남아진다.

천국 천국이란 실체는 무엇일까?

절대적인 악이란 하나님의 때를 맞추지 못하였고, 자기 느낌의 방식, 즉 자기 마음에 취하여 행하는 음란함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창세기 4장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태에서 선과 악을 쪼개서 악인 가인의 제단을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이런 해석이 섭리사의 기본해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은 동생 아벨을 통해서 나아가야 했던 것일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가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다.
하나님께선 선을 행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가인의 기본적 성격은 악하다. 음란하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이다.

게으른 것도 있고, 시기 질투하는 것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때를 맞추지 못하고, 자기 마음에 취해서 살아가는 행위들! 즉, 악하고 음란함이다.

하여, 하나님께선 선을 행치 아니함을 두고 가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헌데 이러한 일을 두고서 아우인 아벨에게 고하였다. 그리고 먼가 대화가 오갔는데 기록되어있진 아니하고,  동생을 쳐죽였다.


창세기 9장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서 벌거벗었다.

성경의 인봉은 감추어질 것은 철저하게 감추인바!
그것이 시대의 인식으로 양심으로 이해가 가지 아니하면 가리우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할까 저어하심이다.

아니면 계시를 받고 기록하는 자의 양심이 정확한 사실경위를 밝히기를 꺼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기도 어렵지만 죽이기도 쉽지 아니하다.

이것은 사람은 사람을 존재로서 인식하기 때문이며, 사람안에는 하나님이 실존하시기 때문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것은 일차적인 이유로 하나님께 분노함이다.
안색이 변하였다. 사단이 개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뜻이 있는 아벨에게 총뿌리를 겨눈 것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라! 말씀하셨다.

사람의 인내는 끝까지다. 그러기위해선 내 마음에 끝이 없어야한다.

내 마음은 그릇인지라! 어느 한계에 가면 차고 넘치게 된다.
사랑도 분노도 그 안에서 찰랑거린다.

그래서 최종은 하나님께 묻고 또 성령과 일체되어서 생활해야 그 한계를 벗어날수 있다

행하기전에 하나님께 묻는 것과 그 순간의 느낌으로 행하는 것 어느것이 이상적일지는 스스로가 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수 있는 것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일 수는 없다.

오직 인내함으로 끝까지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