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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악이란 무엇인가?

마태복음 19장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태복음 16장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선과 악의 경계선이 무엇일까?
누구는 이렇게 사는 것이 선하게 사는 것이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의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만이 아시나니! 그것은 하나님만이 정확한 때를 아시기 때문이다.

역사의 때로부터 시작해서 개인의 때에 이르기까지 신후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시는 것이라!

성경적으로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바뀌는 역사의 때를 알지 못하였기에 예수님께선 악한 세대라!
책망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

무엇이 악하고 음란하다는 말씀이신가?

바알신을 숭배해서? 물질에 빠져 있어서?

구약 유대인들 중에는 금욕적이고,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제사장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책망받았던 것은 시대의 때, 하나님의 때를 마음에서 깨닫지를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때, 역사의 때를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마음에 두가지를 품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먼저는 개인의 때와 하나님의 때를 동시에 품으려 하였기에 그 마음을 음란하다 책망하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때와 그 때를 지키는 말씀의 때를 지키지 못했던 것은 그 마음에 개인의 때를 가늠했기 때문이다.

따먹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지키는 말씀이였다.
헌데 사탄이 유혹하고 꼬드겼다.

네 마음의 눈이 떠질 것이다. 밝아질 것이다.
하나님처럼 될것이다.

하나님의 때란!
무엇을 할 것인지? / 말 것인지? 그 때를 아는 것이다.

말씀의 때로서 시대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아담과 하와는 자기 마음의 때를 추구하였다.



[ 사명자와 면담을 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를 묻습니다. ]
하지만!
[ 답을 얻었지만! 자기의 때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

그 주신 말씀의 때를 지키는 자는 축복을 받았고, 자기의 때를 따라 갔던 자들은 축복도 얻지 못하고, 종국엔 사망의 길로 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내게 선한 일을 묻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선과 악이란 일의 선후에 있음을 아심이라!

사람이 하는 일은 자유의지에 달려있기에 본인이 선택한 시기와 때를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선과 악이 갈리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그 때에는 따먹으면 안되는 것이다.

헌데 자기 마음의 때에 따라서 따먹었던 것이다.
그것이 악이 되어 하나님께 대적함이 되었던 것이다.

자기의 때에 취해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때에 있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이다.

있다/ 없다는 실존의 개념으로서 때와 시기가 중요하다.

사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으니!
이를 실존한다 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는 나를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실존의 말씀이다.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아버지의 때에 맞추어서 행하시고 존재하신다는 말씀이다.

아버지의 때를 따라 행하시므로  하나님의 때를 너희가 알수 없기에 찾아도 찾을 수 없다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7장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때와 시기란 이러한 것이다.

무엇이 때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위한 첫번째 덕목이다.

때를 알지 못하기에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셨던 것이라!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이 시대의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시대의 사명자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사명자를 향한 하나님의 때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자기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사명자는 자기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서 행하심을 깨닫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자기 마음의 때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행하는 것이 바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구시대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취해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때를 알지도 알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음란하고 악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서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같다 표현하셨다.

하나님의 때와 시기는 염두에 두지 아니하고, 그들 마음에 취해 있는대로 하나님이 오실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1장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이 시장하실때 무화과나무의 때는 아니였다.
그에 예수님은 책망하셨다.


마태복음 24장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배우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때를 가늠하며 살아가지만!
인자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그것을 기준으로 오지 않음을 강조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천지창조의 과정중에도 하나님의 때가 드러난다.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때/ 시간을 창조하신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때와 시간의 창조역사인 것이다.

우주만물들의 세계가 있다. 우주란 것이 지금 볼수 있는 우주는 계속 팽창되어가며 창조의 과정을 진행중이다.

이것은 빛의 세계로서 인식가능한 세계다.
시간의 단위로 측정가능하며, 인간사고의 능력으로 조명될수 있는 세계다. 유의미한 세계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란 그러한 세계인 것이다.

하나님께선 [  빛이 있으라하매!  빛이 있었고 ]
이 때를 가늠하는 말씀이 있기전 그 세계를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위를 운행하셨다.

관망하고 바라보신 것이다.

그것을 결코 좋았다고 표현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은 우주만물도 인간도 선한세계로 이끌어 창조해가시고 계신다.
선한 인간으로 창조해가시고, 그러한 인간이 바라보고 인식하고 정의내릴수 있는 우주만물은 하나님께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