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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령함의 의미, 살아 존재하는 것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신령이란 그리스도의 의미다.

그리스도란 신령함의 정석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다.
하나님을 찾아낸 자의 표상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표상으로 삼으셨다.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소통의 의미다.
나에게 있어서의 의미이고, 상대에게 있어서의 의미다.

존재란 실존이다. 나와 너에게 의미를 이루어야한다.

의미를 이루기 위해선 서로의 마음에 실체를 이루어야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실체를 이룬자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의 마음엔 하나님이 실체로서 형상화 된 것이다.

하여 하나님을 찾은 자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 그 마음에 실체를 이룬 것이다.

하여!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이란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법이다.

창세기 4장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 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이 아들을 낳고 에노스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즉, 그 마음에 실체를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man), ‘인류’(mankind)란 뜻.

그 의미상 ‘아담’과 동의어



특히 병들거나 마침내 죽게 되는 인간의 연약함(한계성)을 확인시켜 주는 이름이다.



최초 인류 아담의 손자이자 경건한 셋의 아들(창 4:26; 5:6-11; 눅 3:38). 90세에 게난을 낳았고 905세까지 살았다. 성경은 그의 생존시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고 묘사했다.



아마도 인류 최초로 여호와께 공식적인 예배와 기도를 드렸거나, 여호와를 선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건한 사람은 인간의 연약성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이란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람의 씨앗에서 사람의 본 모습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어진 궁극의 모습이다.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신령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로서의 의미를 이룬 것이다.

또 그러한 모양과 형상을 지닌 존재를 인간이라 부른 것이다.



아담, 에노스 둘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인간의 모양과 형상을 이루기 위해 택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엔 인간의 모양과 형상을 이루어서 나아가야한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문인 것이다.



하지만, 휴거를 이루었으니! 이젠 너희들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여라!  



이는 사람의 모양과 형상으로 재창조를 이루었으니!

직접 구하라! 이런 말씀이다.



구원시키고, 부활시키고, 휴거를 시켰던 것은 사람의 모양과 형상으로 재창조를 이루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신령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기위한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신령의 본체를 만났고, 보았으며, 그에 대해 배워왔다.



그 실체는 말씀으로서 진리를 이룬 그의 삶이다.



삶의 문제인식이고,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으로서 그의 삶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행해왔던 삶은 그의 모양과 형상을 이루기위한 노력의 시간이였다.



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삶을 통해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시고자 했던 그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을 신앙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담이전의 원시인류를 인간이라고부르지 않으셨다.
인간의 씨앗일 뿐이다.

에노스 이전엔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씨앗일 뿐이다.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가죽옷이란 짐승을 뜻하는 것이다. 옷이란 행실이다.
인간의 씨앗으로 대하신 것이다.

신약의 그리스도가 오기전의 인류는 원시인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만물을 통해서 나아갔고, 제물을 드려야만 했다.
인간의 씨앗으로 대하신 것이다.

그러던 것이 결국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고 나서 비로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었나면! 아브라함이 제물실수를 하였다고, 400년 탕감을 때리신다.


창세기 15장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리고 신약이 지나고 성약의 시대가 오고 시대의 사명자가 와서 하나님의 심중에 기대하셨던 사랑의 조상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류가 탄생되었다.

신약의 인류는 구시대의 인류가 되어버렸다.

신약의 인류라는 씨앗으로부터 새시대의 인류가 탄생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령함을 이루었고, 사랑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성약역사 1천년 혼인잔치의 본래의 의미다.

휴거를 다시 이룬다는 것은 신령함을 다시 이루어가는 것이고, 사랑을 다시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물론 그 시작은 사명자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새롭게 고통의 연단을 받으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