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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준다는 것

사람이 생활을 하면서 무언가를 알게되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육신이라서 때가 되면 먹어야하고 추우면 옷을 입고, 저녁이 되면 다음날을 위해서 적절한 수면을 취해야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입고 자는데 시간을 쓰게된다.

헌데 이러한 것들에 제약을 받는 몸이 생긴다면 사람은 무엇을 하며 존재해갈까?

천사들의 마인드와 피조영인 인간의 생각은 시작부터가 다르다.

살기위해서 존재해 가느냐?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가느냐?

살아가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차이가 극명하다.

육체란 한계적 상황속에서 연명해가야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채 살아가야하고, 비조영인 천사들은 존재의미를 찾아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이 배고파서 굶어서 고통받기는 할까?

사람은 육체로 태어나서 그 굴레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귀찮게시리 때가 되면 졸리고 수면을 취하기도 해야하며, 따로는 신체호르몬의 영향으로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을까? 고심하시고 또 고심하시면서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펴오셨다.

하나님은 천지창조와 인간의 창조를 통해서 한가지 의미를 부여하셨으니!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의 세계다.

마음이란 자유의지의 존재체다. 마음체라고 부른다.
형이상학적인 마음과 형이하학적인 육체가 하나로 이어지고 연동되어 존재해간다.

자유의지의 세계는 알아가는 깨달아가는 세계다.
무언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가는 가는 세계가 바로 마음이라는 세계다.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부여한 뜻은 스스로 알아가고 깨달아가라는 뜻이다.

메시아도 스스로가 깨달아서 그 세계를 이루어가는 것이지!
기도중에 책한권을 주시면서 이것이 나 하나님의 역사니라!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그 시대 메시아의 능력에 달려있다.
예수님도 그리하였기에 그먼 티벳까지 가셔서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오신 것이다.

마음이란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셨지만!
그 세계를 터득하고 세워가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자율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기대의 뜻으로 바라보실 뿐이시다.

하나님은 천군.천사가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수없이 고백하고 있다. 그게 다일까? 그 공허함을!

인간은 다르다!
먼저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태어나야 한것이지?

스스로를 반문하는 존재에게 하나님이란 존재는 다양하게 인식될수 밖에 없다.

공허한 천군.천사들의 외침속에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고백하는 음성을 듣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어겐 새벽이고, 누구에겐 고요한 밤이고, 누구에겐 작열한 한낮의 태양이며, 누구에겐 설산의 백설과 같고! 누구에겐 고요한 달밤과 같다.

인식의 의미를 어디에 뒤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인식함의 실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도 알파요 오메가니라! 말씀하시는 명제만 존재할 뿐

그 아득한 시공간의 기억속에서도 본인의 실체가 무엇이였는지를 정의하기 공허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자니까! 나는 절대적으로 이런 모양과 형상이니라! 주장하고 싶으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에 구약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이라 불렀으니!

하나님은 상대체로서 짝을 이루시는 것 즉, 일체의 삶으로 존재하시고 싶은 뜻이다.

휴거된 인간이 만을수록 다양하게 일체로서 존재하시고 싶은 뜻이다.

80먹은 노인이 어린 나이의 육체로 돌아간수 있다면 다양한 어린시절의 모습으로 살고싶은 욕망이 들 것이다.

하나님은 아련한 실체시대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무엇인가를 창조해가는 기쁨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내가 어린시절의 육신으로 돌아가는 것과 어린 손주를 잘 키워내는 것 어느것이 실현가능하며 보람이 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