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 말씀을 듣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성경구절이나 말씀의 제목을 두고서 내 상황을 비추어서 하늘앞에 기도한다.
그 기도에 대한 답장은 어떠한 형태로 오는 것일까?
오늘 하루 온전함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며 하루를 보냈다.
먼저는 내 성격이 급하고 생각이 빠르며, 결단력 또한 남달라서 일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러한 점들이 조직의 리더로서 기획력이 될수도 있지만!
대화나 소통의 측면에선 독단이나 괴짜라는 배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늘 주일날 일을 하면서 여러 상황들을 겪게 되었다.
머랄까? 좀 부족한 그리고 답답한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오는 문제였다.
의사전달을 명확히 하였음에도 명료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오는 소통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들이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곤 한다.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얻은 경험적 결론은 여유를 갖으며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생각이 빠르지 못하고, 인식의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100을 바랄수는 없기에!
의심하고, 또 의심하자! 이것이 사회생활의 틀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를 못하니! 의심하고 또 의심하자!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온전함이란! 내가 온전하려고만 해서는 온전해 질수 없는 것이다.
상대가 온전해 질수 있는 상황적 여건과 배려가 바탕이 되었을때 진정 내가 온전해 질수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온전함의 상징이 아닌가?
그런 그가 이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온전함을 보일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었다.
십자가의 사랑을 품을수 있었기에! 예수그리스도는 온전함을 보일수 있었다.
요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이 내 자신의 온전함에 관한 부분들이다.
소통을 온전하게 하지 못함으로 인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겪고있다.
말귀를 잘 알아듣게 노력해야하며, 인식의 능력부족에 처한 상대의 심적 강박상태 또한 꿰뚫고 있어야한다.
이러한 생활속의 일들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들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들 보다는 상대방의 인식부족으로 오해된 일들이 더 많더라는!
내가 아무리 온전하게 행한다 할지라도 상대의 인식부족으로 인한 오해가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이해되지않는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불가능의 가능을 추구해가는 차원적 삶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깨달아가고 있다.
온전함에 대하여 깨달아 가려면 온전치 못함이 무엇인지 직접 겪고 느껴보고서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다 극명하게 겪게 하시고 스스로 느끼게 하신다
이러하니! 온전함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꼭 이루어야할 인간의 덕목이 아니냐? 반문하고 계신다.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극적으로 깨우치게 하시려면 전쟁을 겪게 하신다.
전쟁은 사람의 인간성을 무시하고, 살인도 꺼리지 않는다.
사랑이란 1도 찾아볼수 없는 세계다.
그러한 전쟁을 2번이나 경험한 사람은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인간의 목적이 사랑을 벗어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언으로 [ 서로 사랑하세요! ]를 남겼다.
그의 생애엔 군부독재를 위해서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는 시대를 경험했다.
그런 시대에서 깨달았던 것은 바로 인간존재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온전해질 수 있는 이유는 타산지석이다.
예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장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이 구절은
1. 끝없이 인내하라!
2. 사랑의 도를 깨달아라!
두가지로 풀이되곤 한다.
내가 경험하는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뜻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사람은 늘 행하던 대로 살아오던 대로 살아간다.
쉽게 바뀌지 않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이해가 되면 용서도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지능이라는 것을 알고나면 어린아이 차원에서 이해해 줄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다.
내 온전함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흔 번씩 일곱번을 겪는다 할지라도 다함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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