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허전함이자, 그리움이다.
잊혀진다. 사라져간다.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도 창조주로서도 아픔이고, 고통이다.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 3장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조주로서는 나아오지 못하고 숨어버린 아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픔이! 아담에겐 사랑이란 느낌의 세계에서 두려움으로 변해버린 마음!
창세기 3장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렇다면 창조주의 인간에 대한 사랑세계란 무엇일까?
혼적 인식의 세계다. 인간이 어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를 바라보고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세계다.
창세기 2장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특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주신 생각하고 스스로 깨달아가는 자유의지의 세계다.
이름을 짓는 것은 인식에서 비롯되고, 확신에 이르렀을때 이름을 부를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4장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담과 하와에겐 하나님이란 이름의 세계는 잊혀져버린 그 마음에서 느껴지지 못하는 존재자였다.
그러던 것이 에노스에 이르러서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존재가 다시 각인되게 되었다.
성경엔 에노스가 복음을 전했다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지만! 정황상 그려볼수 있다.
만물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이르고 그 생각에서 신의 존재를 깨우쳐가는 기대섭리인 것이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을 누가 창조하였으며, 네 주변의 생물들은 누가 창조하였느냐?
이러한 인식의 기반에서 원시인류와 창조주와의 관계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본인이 국민학교 시절에 1학년 수업을 들으러 시골의 한적한 길을 걷고 있노라면!
갑자기 어디선가 처음보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처음 접하게 되는 건물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곤 하였다.
그들의 삶에 내가 개입하는 것이 아닌 내 삶에 그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가 지나갈때 보여주기 위해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대의 연출같았던 것이었다.
그 다음날엔 어제보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왜 안보이지? 어린아이의 혼적세계란 그런 것이었다.
원시인류의 생각세계란 그런 차원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만물들을 바라보면서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런 상황을 이끌어가는 존재자는 누구인지?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정세계에서 창조주는 생각의 길을 잃고서 멀어져가는 어린양을 애타게 찾으시는 것이다.
예수께선 이러한 아버지의 심정을 제자들에게 설파하셨다.
아담.하와처럼 죄를 지었을 지라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세리들도 죄인들도 간음한 여인도 모두 길잃은 어린양인 것이다.
삭개오, 마리아, 부자청년, 나다니엘 모두가 예수께는 하나님을 생각의 길에서 제대로 찾지못하는 길잃은 어린양들인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