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서 평화가 잠시나마 이루어질 때엔 그 시대에 참된 실력자/능력자가 도래했을 때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공법을 택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것이 학문이던 예술이던 심지어 신앙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마태복음 23장
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인생이란 삶 그리고 신앙이란 세계에서 진정한 실력으로 하나님을 대면할수 있는 자가 인류사에 몇이나 되었을까?
그게 안되다보면 자연스레 사도로 흐르게 되어있다.
실력이 없으니! 실력있는 자의 모습으로 꾸미면서 사람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자기가 부족하면 시인하고 자녀에게 다가서야 함을!
스승이라도 부족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며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왜? 욕을 먹을까? 서로 아는체 하기에 급급하며, 서로를 비방하기에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의 모습속에 의와 인과 신을 어디에서 찾아볼수 있는가?
그러하기에 그러한 자들에겐 언제나 사랑과 평화는 찾아볼 수가 없고, 불신과 다툼과 미움만이 싹트게 되는 이치다.
하여 참된 평화란 진정한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감내하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되게 하려는 의지만 가질것이 아니라! 될수 있게끔 고통과 연단과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
실력을 지니면 자유롭고 구속받지 아니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그 실력을 인정하고 구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신약의 아들시대다.
구약의 종이란 굴레를 4천년동안 쓰면서 살았기에 너무도 고난의 시간이였다.
아들이란 실력자가 나타나면서 이땅에 평화가 오게 되었고, 그 기본위에 사랑이 싹트게 되었다.
실력자에겐 미움이나 질시가 있을수 없다.
가르치는 참된 스승의 모습속엔 진리의 모습으로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일례로서!
요한복음 8장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왜 시대에 평화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참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실력을 지니기 위해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의 무시와 질시 그리고 무관심에도 꾸준히 깨달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했을까?
성경엔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지만!
예수님의 사생애는 어떠하였을까?
아마도 집을 떠나서 먼곳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 인생들의 모습을 살피었을 것이다.
또한 세상의 멀고 험한 곳까지 오가시면서 세상을 구원할 그 세계를 경험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장 깊은 설교라 불리우는 마음밭 비유의 말씀을 들어보면!
서양에선 쓰지 않는 마음이란 단어를 언급하신다.
그들에겐 심장이 있을 뿐이지 무슨 마음을 알았을 것인가?
벽안의 승려가 수도했었다고 예수님시대때의 티벳경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그 분이 예수님이였는지는 확실한 것은 없으나.
각설하고 실력이란 단어의 무게를 느낄수 있어야한다.
실력있는 자들은 자유함을 누릴수 있고, 그 자유함의 세계를 가르쳐 줄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을 얻기까지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잘 살피어야 한다.
부부사이에 평화가 부자지간에 평화가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간의 평화가 더 나아가서 교인들 사이에 평화가 오지 못했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도인들 끼리는 상선약수라 칭하며 서로간에 도를 인정해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흘러가듯!
사람의 마음세계도 그러함을 인정해주며, 서로의 깨달음을 인정해준다.
실력! 사랑에도 실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실력이 필요하다.
하나님도 그러하다.
육신으로 오셨기에 육신으로 대하며 사랑할수 있었던 것이 인간으로서는 축복이었다.
육신으로 오신 메시아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그 축복을 차버린 것이다.
인간의 형상인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영의 본체인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실력이 있을지?
그러한 실력이 바로 진리이고 말씀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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