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일까?
스님들은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이라 말하고,
도사들은 광명한 빛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라 한다.
인류의 문명은 불을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할수 있다.
짐승들은 불을 다루지 못한다. 불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원숭이들 중에는 돌을 깨거나 갈아서 쓸수 있는 종류도 있다. 구석기시대를 나름 열어가기도 한다.
어두움을 극복하고 빛을 통해서 삶의 영역과 그 범위를 확장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주어진 자연환경속에서 안주 하느냐?
빛을 통해서 어두움이란 인식의 세계를 밝혀가느냐?
이것 또한 인간 자유의지의 일면이다.
사람이 어떠한 세계에 대해 어둡다는 것과 밝다는 것의 온도차가 존재해 가는데 이는 상대적 인식의 세계다.
인식이란 보다 밝고 보다 어둡다는 상대성을 지니며 존재해간다.
태양빛이 있고, 호롱불이 있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다보니! 어느 순간엔 형광등도 등장하고, 심지어는 인공태양까지 창조해가는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
본다. 인식한다. 이를 밝다고 칭한다.
하여 어느 차원에 이르면 본인 나름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단계에 이르며, 이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세상의 법칙에 어긋남이 없으며, 타인과도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상선약수라 칭하는 도의 세계다.
헌데 성경엔 천지를 창조하시던 창조주가 흑암이 깊음위에 있었다.
그런데 빛이 있으라하매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다.
창세기 1장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2절엔 마음의 세계를 칭하시고 계시며,
3절엔 자유의지의 세계를 논하고 계신다.
4절엔 인식의 세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내면적 마음세계가 그러하다. 누구나 흑암이 깊음위에 존재하며, 관망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유의지로 존재해가며, 눈이 밝아져서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을 쪼개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과악을 알게되면 최종적 결론인 인식의 세계를 스스로가 완성해가는 것이다.
그 결과로서 해탈에 이를수도, 광명한 빛의 세계 즉, 마음의 근본자리를 찾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구원의 빛을 얻을수도 있다.
성경엔 이러한 선과 악의 세계를 선과 악을 아는 나무, 즉 선악과라 칭하면서 함부로 따먹지 말아라!
다른것의 열매는 다 따먹어도 된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시면서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이라는 빛의 세계를 주셨다.
그리고 선과 악을 인식할수 있는 키를 주셨다.
창세기 2장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임의로 먹되, 이는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똑같다. 부모들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자연 세상을 알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되면 자연이 배우자를 선택할 눈이 떠질 것이다.
아담과 하와 그들의 육적인 나이와 시대의 문명수준이 어떠했을까?
예수님이란 시대 메시아가 오기전과 오신후의 인류 문명은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듯이!
인식의 세계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하나님께선 죽는다. 사단은 죽지 않는다.
헌데 아담은 하나님과 관계성이 단절되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마음도 아담의 마음도 흑암이 깊음위에 처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 3장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근본된 토지와 근본되지 않은 토지의 차이란 무엇인가?
육체의 삶과 육신을 벗어난 마음의 삶은 무엇일까?
육체란 흙이다. 마음이란 흙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세계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때의 마음이란 죽은자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가 눈이 밝아져서 빛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보다 밝은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눈엔 그들 대부분이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구원이란 근본에 있다.
그 근본을 흙에 두느냐? 흙을 넘어서서 마음속 실존의 가치에 두느냐에 따라 구원의 길이 갈리게 된다.
구원이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출발하여 선과 악의 인식에서 결정되고, 그 영혼의 운명도 그 인식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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