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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권세를 깨닫는 것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그것을 믿는 자는 아들과 같은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구한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


권세란! 위임된 권한이나 그러한 능력을 의미한다.

하여! 누군가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능력이 나올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란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선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믿었기에 그 아들의 권세를 부여받으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음으로 그 권세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여! 예수께서 아들이란 그 믿음을 본인이 깨닫기까지 그리고 그 아들이란 믿음을 사단에게 보이기까지 광야에서 사십일을 시험받으셨다.


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이 전제조건이 예수님에게 시험의 대상이였던 것이다.

너가 깨달은 아들이란 그 믿음이 정말 맞느냐?
심지어 네가 깨달은 그 하나님이 아버지가 맞느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란 그 분의 권능을 믿느냐?
나에게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리라! 시험한 것이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휴거의 시대를 그리도 기다렸다.
열처녀의 혼인잔치 비유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약의 시대가 저물었다.

신랑되신 예수께서 오실때 등불들고 마중나갈 준비 되었느냐고? 찬양을 그토록 부르며 기다려왔다.

그 기성의 처녀들은 나이가 들어서 육신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 후손들은 혼인잔치의 비유를 망각해버린채 살아가고 있다.

구약시대의 말미에 유대인들이 그 아들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너는 나사렛 예수가 아니냐? 네 아버지는 목수로서 그 아들이 아니더냐? 지극히 세상적이고, 지극히 현실적 사고로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대하였다.

그리고 그런 답답한 상황을 두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그러자 수제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그리고 또 예수께서는 답답하신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장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요한복음 13장
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쿼바디스! 영화로도 나오는 그 유명한 대목이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여쭈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어디로부터 오셨는지를 깨닫지 못하였기에!
다시 어디로 가시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누가복음 23장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에겐 지금은 네가 나를 따라올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일까? 육신이 죽지 않아서?

하지만 우편 강도에겐 네가 나와 같이 낙원에 들리라!
말씀하셨다.

이 대목이 신약성경의 핵심적인 하이라이트다.

그와같이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엔 그 핵이 존재한다.

바로 열처녀의 비유다.

마태복음 25장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기름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아무나 할수도 있지만! 영적 사랑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아무나 예수님을 사랑할수 있었으나, 실제론 그러하지 못했다.
가롯유다도 제자까지 되었으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함으로 사망으로 끝났다.

신약시대의 사랑의 핵심은 깨닫는 것이었다.
바로 아들이었다. 아들의 의미를 깨달아야 했다. 이래서 아들이신 것이구나!
그리고 그 믿음이 서야했다. 그 믿음은 아들의 행실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 신부가 / 처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자만이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신부란 신부의 행실을 행함으로 알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신약의 성경엔 예수님의 24시간 행적이 다 나와있지 아니하다.
단지 부분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기록도 나와있다.
너희는 죄사함을 받았기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다.
아담.하와로부터 내려온 근본의 죄를 사하여 주셨기에 너희 행실의 소소한 죄들만 회개하면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러한 모든 부분들을 보았다면 제대로 깨달았다면 베드로가 닭이 울기전까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아들이란 개념을 깨닫지 못했고, 그 권세를 깨닫지 못했다. 신약의 주를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무지를 순교하는 순간까지 가슴에 한으로 한탄하였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우편강도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비수로 박혔을 것이다.

오늘 너는 나와같이 낙원에 들리라!

휴거의 시대이고, 신부의 시대이다.
성령의 귀있는 자들은 진정 깨달을 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