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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뜻

신과 인간의 관계설정이란 하나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 자유의지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게 되었다.

성경엔 이러한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창세기 4장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 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 라는 인물의 역할은 무엇이였을까? 그시대에 중심인물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중심인물들의 공통된 사명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 멀어진 마음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사명이다.

아담.하와시대에 했어야 할 일들이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 아담 --> 셋 --> 에노스 ] 라는 시간을 두고서 그 자유의지가 발동하게 되었다.

에노스로 인하여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이다.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설정이 시작된 것이다.
성경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조물들을 보이시면서 아담이 부르는 것이 그 이름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

어린아이를 키우다보면 먼저는 맘마, 밥, 물 등 손쉬운 개념부터 가르친다.

그러다 종국엔 엄마, 아빠라고 부르도록 시킨다.

무엇인가를 제공받으면 그 제공자에 대해서 인식하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좀더 철학적으로 표현하셨다.

마태복음 16장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말인 즉, 너희는 나를 누구라 부를 것이냐?

이러한 의미다. 그토록 가르쳤으니! 너희가 깨달은 그 이름을 불러보아라!

당신은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고백하며 부른다.

헌데 예수께선 이를 알게 하신이가 혈과 육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하신다.

베드로에게 자유의지의 권세를 더하셨다.

이는 마치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한 구절과 맥이 상통하지 않는가?

창세기 2장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유의지의 권세를 주신 것이다.
이렇게 불러라! 강요하지 않으셨다.
네가 한번 불러보아라! 그래 그럼 그이름으로 하여라!

인간에게 제2창조주의 권세를 주셨으니!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던 창조의 뜻이다.

마태복음 18장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그들의 자유의지속에 내 뜻도 같이한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것인지를 살피어보자!

이사야 14장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이러할 진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생각을 돌이키게 한다.

분노의 포도주틀을 밟는 그 사명자들이 있으니!
우리는 중심인물들이라 칭한다.

예수께선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엇인지를 철학적이고 문학적으로 권위있게 표현 하신 것이다.

자유의지란 신으로부터 창조됨과 동시에 부여받은 권세이고, 그 권세에 대해 예수께선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11장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들이란 권세가 이러하다.
아들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겐 이러한 아들의 권세가 허락된 것이다.

인류는 에덴으로부터 쫒겨나서 지금 이렇게 전쟁과 재난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살고있다면서 아담.하와에 대한 비난을 수없이 해왔다.

그 자유의지의 세계가 바로 인류가 꿈꾸어오던 에덴인 것이다.
생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겠는가?

그 나무들이 있는 곳이 에덴인 것이다.
그 나무들이 다시금 자라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 나무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다.

예수님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2장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에게로 향하도록 그 마음을 되살리는 것이었고, 복음의 불이였다.

근본된 에덴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아담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후아담 예수께서 행하시는 뜻이다.


창세기 3장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고통된 마음세계다.

인간은 자유의지로서 자신의 삶을 재창조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의지를 망각한채 생명나무의 길을 가지 못하였으니!

하루 하루 살아도 인생의 의미도, 창조된 뜻도 모르고, 다만 무미한 삶을 하루 하루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것이 무려 후아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구약 4천년의 역사였다.

그들은 무지해서 스스로를 구약의 율법아래에서 4쳔년을 가두었고, 또 예수님이 오시고 2천년이 지난 6천년간을 지금까지도 율법아래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의 뜻이란 인간의 자유의지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자유의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 자유의지로부터 종이냐?/ 아들이냐? 가 좌우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