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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8 생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비록 육신은 소멸되어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이를 두고서 우리는 영원한 삶, 영생이라 부른다. 또 영생을 얻었으니 구원받았다고도 한다. 예수께선 말씀하시기를! 개역한글 요한복음 6장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카톨릭에선 이러한 미사의식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지니며 신앙해간다. 기독교에선 이러한 성찬식을 특정한 날에만 하.. 더보기
구원론7 내가 구원을 받아서 가는 세계는 어떠한 곳일까? 안보아도 비디오란 말이있다. 헌데 사람들은 심리가 그렇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서 그 허황된 심리를 통렬하게 꼬집었던 것이니! 헌금항하리에 당신이 동전을 떨어트리는 순간 당신의 조상도 좋은 세계로 갈수 있다는 그 교리! 아마도 우리는 물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또는 더 좋은 구원을 얻기위해서 의를 쌓는다는 명목으로 헌금들을 하고 있을지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구원을 받아서 갈수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신앙들을 해나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건을 고를때에도 좋은 물건을 알아야 좋은 물건을 살수 있는 것처럼! 구원. 최고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구원의 차원도 높일수 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 .. 더보기
구원론6 고난의 세월 구약! 구약이란 단어를 들으면 우리의 인식속에 어떠한 느낌들이 떠오르는가? 고난! 고난이라는 단어가 역경이란 말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고난! 이 희망이 없는 단어가 주는 그 황량함과 쓸쓸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역경이란 단어는 적극적이고, 의지적이며, 능동적인 상황을 드러내고 있지만! 고난! 이 고난이란 단어속에는 희망보다는 좌절, 의지보다는 강요의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엄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녕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아라! 하지만, 아담은 하와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만이야 그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지속적으로 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선 그 반복된 행태를 보시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너는 짐승의 그러한 삶으로 살아가려무나! 인간의.. 더보기
구원론 5 나는 사람이다. 영인체라는 말이 있다. 영이라는 말과 영인체라는 말이 단순 같은 의미로쓰일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다른 의미다. 천사는 천사일 뿐이다. 인간의 창조 이전부터 있던 비조영인 것이다. 영은 하나님께서 비조계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존재세계의 상대체들로 창조하신 대상들이다. 생각에서 생각으로 구현된 세계라서 실체적인 느낌의 것들은 딱히 없다. 머랄까? 홀로그램이 이러할까? 아무리 음질이 좋은 음악을 스피커로 듣는다 할지라도 디지털화된 음악과 바로 눈앞에서 피아노나 기타를 쳐서 나오는 소리의 느낌은 다른 것이다. 헌데 피조계를 창조하시고 피조영을 창조하시고 나서는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이 아담인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여! 내 어여쁜자여! 이러한 이야기가 아가서에 나오는 .. 더보기
구원론4 아들의 개념. 구원을 이야기 할때엔 그 핵이 있어야한다. 구약은 종이란 핵심개념이 있었다. 이 종은 정말 어마어마한 권세였다. 전능자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인 것이다. 머랄까? 왕의 종이니까! 왕의 권세를 좌지우지하는 전능자 하나님의 종은 세상 최고의 권세인 것이다. 헌데 한술 더떠서 아들이란 핵심개념을 들고서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이 밭에 감추인 보화인 것이다. 이것을 4천년동안 밭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아담의 타락을 두고서 기도하시고 그 무너진 사명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께선 사생애기간 행해오신 것이다. 후아담인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 것이다. 그리하여 전아담은 사망에 내어준바 되었지만 후아담은 생명이 되었다. 예수께선 평소에도 너희는 자녀들이다. 이젠 내말을 듣고 믿고.. 더보기
구원론3 구원의 정의 구원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예수를 믿고서 구원을 얻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를 한다. 12지파를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아우러서 간증을 하고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생각과 신앙적 가치관 등을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원! 구원이란 스스로 이루어가는 것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구원자가 있어야하고 그 대상인 구원받을 사람이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니! 구약에서 하나님과 아담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구원자시다. 그를 구원시키시려 부르셨다. 그의 사명이 앞날에 무엇일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아담과 하나님은 구원시키는 자와 구원을 받는자의 관계설정인 것이다. 아담에게 해라!/하지마라! 딱 2가지를 말씀하셨다. 먹어라!/먹지마라! 먹으라다는 것은 육.. 더보기
구원론2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했고, 그래서 죄사함을 받지 못한채 사망으로 기울게 되있다. 천국의 역사가 임박하여 세례요한은 외치고 다녔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대목에서 기독교 부흥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의 교회상이 떠오른다. 세례요한처럼! 대한민국의 12지파에선 각각의 달란트대로 생명들을 거두어 들이고, 찬양과 회개의 눈물로 주님이 다시오시기를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주가 다시오셔서 천국으로 휴거시켰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엘리야를 기다리며 하늘을 고개아프게 쳐다보듯이! 대한민국의 기독역사도 전철을 되밟아가고 있다 정확하다 어쩌면 이리 똑 같을까? 지금 유대인은 하나님이 이땅에 다시오실 것이란 믿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기독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 더보기
구원론 1 구원을 바라는 사람과 구원을 주는 사람의 관계설정이란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내가 전능한 존재가 벌레같은 너희 인간에게 자비와 궁휼을 베풀어서 그 길을 인도하리라! 감사하나이다. 오직 주의 권능에 의지하고 은혜를 구하나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녀온 지금까지의 구원론이다. 사실 이 구원론은 구약 유대인들이 지녀온 구원론적 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단지 그 대상이 하나님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오신 전능자 예수님으로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사실 예수라는 인간의 몸을 쓰고 오신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시려고 인간의 복장을 입고 오신것이다.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사랑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인간이란 육신 즉 사랑의 도구를 통해서 인간에게 접근 하신 뜻이다. 예수께선 자신을 묻고 자신을 통해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