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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란 소통의 길 전도서 7장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생각은 궁극의 언어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듯이! 생각하면 그 사람의 의중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생각이란 투시하듯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기에! 그 사람의 언행을 살피어서 두루 분석해 보는 것이다. 신도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각이란 핵을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혼골수를 쪼개신다는 말이 있거니와! 그러한 생각의 소통세계를 통하여 인간과 궁극의 대화를 나누고 일체(닮아가는)되는 것이다. 신학의 영역이 참으로 모호하다. 삶이냐? 철학이냐? 아니면 인문학이냐? 어느 영역에나 걸쳐져 있으면서도 어느 영역에도 딱.. 더보기
인생의 맛 맛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분야에 대해 눈을 떠가는 과정이다. 맛을 알기위해서는 먹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이는 인식행위다. 맛을 안다는 것은 감각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커피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단맛, 신맛, 고소한 맛 등등이 그 쓰디쓴 커피속에서 느껴진다고 말한다. 필자는 커피보다는 차를 선호한다. 커피를 각성제로 대용하기에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그 쓰디쓴 커피를 얼마나 마시고, 느껴야만 시나브로 그러한 맛의 세계가 열리는 것일까? 아날로그란 세계가 바로 맛의 세계다. 인생의 삶을 통해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들을 고루 겪으면서 음미하면서 나름의 인식관을 구축해간다. 그리고 그 선호되는 맛을 재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러한 맛이 나오는 삶속에서 만족을 누리며 .. 더보기
사랑과 평화를 이루는 왕 사랑의 세계란 평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내 마음에 분란과 시기와 다툼의 세계가 열리어 있는데 사랑의 세계를 꿈꿀수 있을까? 예수께선 사랑의 세계를 이땅에 이루기 위해 오셨고, 무엇보다 화평을 강조하셨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것이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라! 말씀하셨다. 로마의 군졸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 자신을 이 십자가에서 구원하여보아라! 조롱하였지만! 예수께선 저들이 모르고 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무지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아들의 조건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고통을 피하지 아니하셨고, 살점이 뜯기고 피와 뼈가 드러나보이기까지 고통을받으시면서도 그 마음에 평화를 잃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는 땅에선 평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더보기
느낌이란 세계 느낌! 느낌을 글로써 표현한다면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서로간에 사람이 느끼는 감정들을 명확하게 정리한다는 것도 쉽지 아니하듯! 남녀가 서로에게 느낌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썸인가? 아닌가? 썸이라면 어떠한 뉘앙스인가? 친근함인가? 낯설임인가? 친근함이라면 익숙함인가? 편안함인가? 낯설음이라면 색다름인가? 겉보기와는 다른 이중적 느낌인가? 뉘앙스를 한마디로 정의내리는 것은 속단이 될 수도 있고, 위험성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오묘한 것을! 예수께선 이러한 사람의 오묘한 마음을 두고서 여러 설교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물며! 전능자의 마음이랴? 인간은 신의 의중을 헤아릴때에 심정세계라 부른다. 심정이 통하는 세계가 있으니! 그 심정권안에 다가서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고 주관.. 더보기
가장 기본적인 것들! 세상을 살면서 경험에서 배우면서 삶의 지혜와 슬기로움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다. 배우기 위해서 생활을 하는 것과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들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연스러움!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위적인 관계성을 두고서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타산일 뿐이다. 내가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배려를 해주는 과정속에서 너도 나에게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랑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 신앙이란 것도 배우기 위해서, 신앙하기 위해서 생활을 해나간다면? 그러한 조건명제 아래에서 신앙이란 이미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고, 삶과 조화를 이루며 신앙의 세계를 알아가고 배워가야할 부분들이 신학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되어버린다. 유대인들의 .. 더보기
주관이란? 사람들은 주관에 대해서 논한다. 나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좋다. 어느 도인들은 나는 내 주관을 벗어났다. 나는 주관이 없다. 말들한다. 과연 그러한가? 주관! 주관이란!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자체가 주관의 덩어리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누구라도 자기주관속에 갇혀서 살다가 끝나는 것인가? 하여! 주관이 없을순 없으나! 변화의 삶을 살고 있지아니함을 주관에 빠져있다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변화의 삶을 추구하고 있지 아니하다면 나는 주관속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카톨릭, 기독교인 과연 이들의 근본 차이점을 무엇으로 나눌것인가? 시대주관권속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정도를 구분짓는 용어일 뿐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현 기독교가 변화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지혜와 슬기란 어떠한 삶으로부터.. 더보기
진리라는 것의 특성. 진리라는 것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그리고 법칙의 존재를 깨우쳐가는 것이 진리의 특성이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인식이나 일반관념에 반하는 사실들이나 법칙들이 태반이며, 그러한 인식의 과정에는 자신의 살과 뼈를 깍아내는 고통이 수반하는 것이다. 흔히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고행을 행하며 깨달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면벽수련을 하고, 일부러 육체에 고된 노동을 가하고, 지쳐 쓰러지기까지 반복적 일을 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바로 사람의 뇌가 관성에 젖어서 살아가기에 그러하다 삶의 무게가 더하여 질수록 사람의 뇌는 관성의 법칙에 강하게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하기에 그 관성을 벗어나서 우주로 날아오르기 위해선 엄청난 탈출.. 더보기
사명자는 시대의 차원성을 타고 온다. 예수께서 가장 많은 힐문과 비난을 당하셨던 것이 네 선생은 어찌하여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느냐? 사실 율법이란 죄를 지은 인류가 하나님께 탕감과 형벌을 받는 기간의 근신하는 행위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근신하는 삶의 수칙을 쭈욱 나열해 놓은 것이다 이미 한번 죄악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툭하면 죄를 짓기 쉬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라!/하지마라! 딱 두가지의 행위의 준칙만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 구약역사의 차원이었다. 헌데 이러한 정언명령의 논리구조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펴기엔 맞지 않았다. 마치! 비유를 들자면 이러하니! 부잣집 주인에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양자를 들일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사상과 생각의 세계를 잘 이어서 가문을 한차원 번영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더보기